호롱불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놀이
아버지가 손가락을 펼치면
강아지 토끼가 태어났지요
폴짝폴짝 손끝에서 뛰어내리던
내 유년의 친구였어요
고된 삶 다 풀지 못한 손가락 이야기들
그림자도 함께 거두어
훌쩍 떠났지요
이젠 산마루에 올라 지켜보시는
관객도 없는 쓸쓸한 무대
들메꽃 핀 봉분에서
저녁 어스름 산그림자를 떠밀고 있네요
◇한명희 =2023년 ‘불교문예’ 신인상 수상. 형상시학회 회원.
<해설> 어린 시절 시인에게 그림자놀이를 보여주던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시다. 그러나 시인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는 영원히 살아계시는 아버지다. 호롱불에 비친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보여주던 아버지는 아마도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손으로 만들어 내던 아버지는 고된 삶을 다 풀지 못했던 것 같아,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시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사후의 산마루에 있는 산소에서도 아버지는 어스름 그림자를 떠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시인은 편안한 저녁을 맞고 있다는 것. 부녀의 정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그런 시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