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을 꾸었는데
깨어보니 개가 없다
상상의 끄나풀이 되지 못한
몇 번이나 반복해서
꿈속에서 들여다본 너의 얼굴이
세월에 묻혀
기억조차 없는 얼굴이 되어 있다
녹물빛 저녁 어스름에 둘러싸여
반지름 15센티미터의
난간을 걷다가
주름진 얼음벽 장막 뒤로
임종하는 늙은 개처럼
너는 사라진다
◇권분자= ‘월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엘피판 뒤집기’. 소설집 ‘출소를 꿈꾸다’가 있음.
<해설> 아무것도 아닌 잡스러운 꿈과 개가 등장한 개꿈? 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시인이 꾼 꿈은 실제의 개가 등장하는 꿈인 듯도 한데, 문제는 꿈이란 여러 조각의 심리가 만들어 낸 무의식의 결과물로서의 편집된 영상 같은 것이다. 시인은 그런 심리를 이동 조립 편집하는 새로운 영상 같은 시 세계를 추구 탐닉하는 듯도 보인다. 일반적으로 거울이라 해도 될 것을, 거울 이전의 청동거울이 주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상태 즉 흐려서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하는 거울로 현재의 자신과 까마득한 과거 혹은 전생의 너(자신)를 동시에 비추어 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의 물음에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