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1
[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1
  • 승인 2023.10.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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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해사하게 웃었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체구가 작고 다부지지 못해 체력도 약했다고 한다. 농사짓는 사람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는 몸집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더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했는지도 모른다. 뼈대가 굵은 엄마는 농사일을 해도 쉬 지치지 않았고 인내심이 있었다. 아버지가 약해서 엄마가 더 강해졌는지도 모른다. 엄마마저 홍희처럼 저질체력으로 타고났다면 홍희네 집은 더욱 가난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40이 넘어서부터 간이 좋지 않았다. 체력은 약했지만 술 마시는 것은 잘 했다. 술을 좋아했고, 자주, 많이 마셔서 간이 안 좋아진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부터 여리여리한 체질이라 오장육부가 강건하지 못했는데다가 술을 자주, 많이 마셔서 간이 빨리 상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건강검진을 2년에 한 번이라도 받았다면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를 할 수 있었겟지만 당시에는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다. 이미 상한 간이 아파오기 시작하면 안계나 도리원 의원을 가서 약을 처방받아왔다. 아버지가 약을 먹는 모습을 본 것은 아버지가 60이 넘고 난 뒤였다. 아마 병원을 가고 약을 사먹을 여유가 없어서 안 간 건지도 모르겠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에 병원을 간다는 것은 사치였다. 밥상에 오르는 반찬도 변변치가 않았고, 홍희가 입는 옷도 책도 동네 사람이나 친척들이 주는 것을 입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술을 마셨다. 돈이 없어도 술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버지였기에 아버지와 같이 어울리고 술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술값을 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고추를 팔거나 벼를 판 날에는 그동안 밀린 술값을 자신이 냈을 것이다. 그런 날은 더 술이 취해서 집에 더 늦게 들어왓다. 아버지는 남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것은 염치없어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자주, 많이 마시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간경화로 75세에 저 세상으로 가지 않고 80이 넘어서까지 엄마와 함께 살면서 딸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엄마도 치매가 일찍 걸리지 않고, 영양이 부족하지도, 마을사람들과 정서적 교류가 부족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해사한 웃음을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홍희의 추측일 뿐이다.

어느날 아침, 홍희는 아버지의 그 웃음이 싫었다. 그 웃음을 싫어했던 아침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큰방옆 마루에 앉아있었다. 홍희는 아랫방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아마도 아침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을 것이다. 홍희가 방밖으로 나오자 마루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바로 보였다. 서로를 발견하자 아버지는 홍희를 보고 어느때보다도 해사하게 웃었다. 약간은 부끄러운 듯, 홍희에게 나쁜 일을 하고나서 미안한 듯한 해사한 웃음. 홍희는 그 웃음이 싫었다. 역겨운 것 같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날밤에 아버지의 모습이 홍희에게 남긴 감정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벌써 잊은 것 같았다. 아니 잊고 싶어하겠지. 그래서 저렇게 해사한 웃음으로 홍희를 맞이하는 것이다. 자기의 어젯밤 모습을 잊어달라고 말이다. 다시 자기를 좋아해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젯밤 기억이 쉽게 잊힐 리가 있을까. 지금 55세를 넘기고도 사라지지 않는데 겨우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에 기억이 사라질 리가 없다.

아버지는 어젯밤에 술이 크게 취해 집에 왔다. 해가 지면 밭이나 논에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인데, 어스름이 지나고 까만 어둠이 마을을 집어삼켰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을 준비해 둔 엄마는 홍희와 같이 밥을 먹고 느긋하게 아버지를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도 홍희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자신도 밥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똥마려운 강아지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다니듯이 부엌에서 방으로, 마당에서 밖으로 동네사람들 집을 찾아다니며 아버지가 어디있는지 물으러 다녔다.

결국 엄마는 어린 딸이 굶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버지를 데리러 이두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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