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풍란
[좋은 시를 찾아서] 풍란
  • 승인 2023.11.0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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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현 프로필 사진
서승현 시인

잘린 소나무의 굽은 가지에

풍란 뿌리를 앉혀 본다

거친 풍파를 안으로 삭인 결 고운 솔향기가

풍란의 뿌리를 다독이며 온몸을 내어주자

겉돌던 풍란이 차츰 실 같은 정 붙이려

녹색 발가락 끝

투명한 촉수 내밀며 끙끙 애를 쓴다

죽음을 넘어서서 붙잡아 주려는 향기와

생을 붙잡으려는 안간힘이

서로 다른 몸을 통해 새롭게 이어지는 삶

애초에 생명 받았으니 보듬어 안고

푸르고 싱싱하게

한세상 살아야 한다

한 땀 , 또 한 땀

절벽을 타고 오르는 실뿌리가 있는 한

희망의 반올림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승현 = 2001년 ‘시와사람’으로 등단·시집으로 ‘푸른현호색꽃 핀 성채에 들다’, ‘분홍, 서러운 빨강’이 있음. 1999년 ‘수필과비평’ 중편수필현상공모 대상 수상. 2018년 제5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2022년 시와사람시학상 수상.

<해설> “잘린 소나무의 굽은 가지에 / 풍란 뿌리를 앉혀 본다” 는 시인 자신의 행위이고 “겉돌던 풍란이 차츰 실 같은 정 붙이려 / 녹색 발가락 끝 / 투명한 촉수 내밀며 끙끙 애를 쓴다” 는 풍난의 행위이다. 두 행위가 고스란히 한 시안에 그려지고 있음은 시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생명이 어떻게 버티고 살아 내는 지를 시인은 관찰된 대상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이때 소나무는 죽음을 넘어서서 붙잡아주려는 향기를 뿜어내어 풍란과 내통하면서 한 세계를 이루는 삶, 아름답지 않은가. 소나무와 풍란의 이야기 같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희망의 반올림이 여전히 유효한 우리네 사람 간의 끈끈한 이야기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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