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공연의 완성
[문화칼럼] 공연의 완성
  • 승인 2023.11.08 21: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약 10여 년 전 우연히 ‘가을음악’이라는 제목의 글을 부탁받으면서 오케스트라 공연과 친하게 되었다. 막연한 제목의 글을 쓰기 위해서 음악을 막연히 이것저것 찾아 듣다가 교향곡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아직 듣는 귀는 부족하지만 좋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고자 경향 각지로 때로는 해외까지 발품과 많은 지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공연 서너 개가 떠오른다.

나를 한동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푹 젖게 했던 ‘유리 시모노프’ 지휘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비창’이 먼저 생각난다. 워낙에 비싼 공연이어서 음악을 미리 거의 백번은 듣고 갔었다. 주요 선율이 늘 귓가에 떠오를 정도였으니 그날의 공연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게다가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 러시아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더 이상은 없는 공연이었다.

그 다음은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함께하는 ‘번스타인 2번 교향곡’이다. 당시 일본 여행 중 도쿄 산토리 홀에서 감상하였는데 역시 사전에 음악을 많이 듣고 ‘불안의 시대’라는 키워드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및 번스타인과 그 시대에 대하여 들여다보았다. 공부한 만큼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처럼 최정상급 큰 덩치는 아니지만 도이치 캄머 필의 슈베르트 9번 교향곡 ‘그레이트’도 대단했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50여명의 단출한(?)편성의 악단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정말 그레이트 했다. 그날 그들이 들려준 음악만큼이나 공연에 임하는 파도치는 듯한 단원들의 모습과 자세역시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의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역시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체코가 자랑하고 사랑하는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레퍼토리로만 꾸려진 공연이니 이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직접 만나 볼 드문 기회였다. 사실 체코 필의 명성이야 새삼 논할 필요가 없다. 드보르자크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이 다루는 레퍼토리는 작곡자가 그렸던 그림이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는 교향곡과 더불어 오페라도 많은 명반을 남긴 거장이다. 그가 체코 필 상임지휘자가 된 과정의 이야기도 감동적 휴먼스토리다. 단원들의 절대적 요청에 의해 기꺼이 그들의 대디(Daddy)가 되었고 이런 신뢰와 상호존중 속에서 만드는 음악은 궁극의 가치를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세상에 눈감고 귀를 닫은 채 자신의 음악에만 매몰되어있는 예술가가 아니라 문제에 적극 발언하는 행동하는 음악가이기에 평소에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던 마에스트로를 친견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드보르자크는 기차를 특히 좋아하여 프라하 중앙역에 기차가 몇 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말했다는 일화가 있듯이 교향곡 7번도 기차와 관련 있다. 시골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오는 기차의 모습에서 주요 선율을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음악이 시작되자 곧 드보르자크의 음악임을 알 수 있는 그만의 시그니처 색채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일본의 ‘후지타 마오’가 협연한 피아노협주곡은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다. 또한 해외명문악단의 내한공연은 국내 팬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협연자로 정하는 게 일종의 문법이다. 그래서 후지타 마오의 협연은 오히려 신선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반짝이는 음악성으로 그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역시 세묜 비치코프는 거장이었다. 교향곡 7번의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동작을 바로 풀지 않고 음악의 여운을 꽤 긴 시간동안 품고 있다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단원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지휘자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날 공연을 함께한 관객들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음악을 마음속에 담아갔다고 본다.

다만 이날 공연의 빈자리가 꽤 많았던 것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다음 주 열릴 예정인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조성진 협연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티켓 오픈 후 불과 수 분만에 매진되었을 것이다. 그 외 런던 필, 홍콩 필 공연 역시 매진 된 것에 비하여 체코 필 공연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처럼 조성진, 임윤찬을 비롯한 소수의 대중적 인기를 가진 협연자에게 의존하는 형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세묜 비치코프에 체코 필, 거기에 드보르자크 레퍼토리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정도면 설명이 필요 없는 완벽한 구성이 아닌가? 이런 공연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안목과 호응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