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낙수효과’는 있을 수 없다
[의료칼럼] ‘낙수효과’는 있을 수 없다
  • 승인 2023.11.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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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임연수소아청소년과 원장
올해는 사과 농사가 흉작이라서 사과값이 4배 정도 뛰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과의 소비를 줄이면 될 수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 또 가을, 겨울에 제철 과일로 사과만한 것이 없으니 무조건 안 먹을 수도 없어서 낙과나 상처가 있는 사과 판매가 늘었다고 한다. 내년 사과 수확 철이 되어야 공급이 원활해진다고 하니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 사과 나무를 심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리고 매년 겪는 일이지만 양파값이 뛰었다고 너도나도 심어서 양파값이 폭락하는 일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어서 사과나무를 더 심어서도 안될 일이다.

하물며 기호 식품에 해당하는 사과, 양파 공급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지금 정부나 언론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필수과목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한다. 의과대학 6년 수련 과정 4년이 필요하니까 전문의 배출까지 10년이 걸린다. 또 의과대학에서 실습이나 교육을 담당할 기초 교수나 임상 시설도 부족한 상황에서 필요한 다른 조치 없이 정원만 늘린다는 건 사과가 모자라니 사과나무를 심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게다가 의사 정원이 늘어나면 낙수효과로 필수 의료 전문의가 늘어날 거라며 낙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가 낙과도 아니고 낙수효과라니.

모든 과가 다 힘들고 어렵지만 특히 수련 과정에서 밤을 새야하고 진료 볼 때마다 숨은 폭탄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하는 즉, 필수 의료는 생명과 직접 연관이 있어서 긍지와 노력, 그 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좀 힘들다. 수련의과정 3년 차일 때 1년 차 여선생님이 응급실 당직 때 제때 콜도 받지 않고 그냥 해열제만 줘서 보내고 병실에서도 불성실함이 지나쳐 내가 손목을 끌고 짐을 싸게 해서 내보내 버렸다. 그 일로 당직을 벗어나야 하는 년차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당직을 서야했지만.

소청과 의사라면 귀찮아도 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을 이뻐하지 않는 의사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여선생님은 어딘가에서 지금은 소청과 의사를 그만둔 걸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날 고마워하면서 살고 있겠지만 나는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야 하는 게 소청과 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어졌다. 낙수효과를 기대해서 할 수 없으면 필수 의료를 하라고 한다. 너무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기분을 떠나서 그 과에 대한 긍지가 생기려면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좋고 자랑스럽고, 위험하지만 우리가 소신껏 진료한 일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려는 사회적 지지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아기들 4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사건으로 모든 책임을 의사들에게 전가하면서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2019년 112%에서 2019년 99%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2021년 코로나 사태 이후 소청과 폐업이 늘었고 2023년 지원율은 25%가 되었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나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낮은 수가에, 게다가 젊은 보호자들의 민원과 맘카페에서의 조리돌림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리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없이, 할 게 없어서 지원하는 소청과 전문의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기면 된다는 발상 자체는 문제가 많다. 지금도 소청과 전문의 중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소청과 과목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중에 배출되고서도 다른 일을 하면 그만이 아닌가.

얼마 전 의료사고 보상사업에 소청과 진료를 추가하는 의료분쟁조정법에 복지부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뜻을 보였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형사고소를 당하는 경우, 의료분쟁에서 합의금을 키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형사처벌면제 조항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아진료 수가의 정상화를 통해 아픈 아이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육아 상담으로 우리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소청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고 시 책임을 안 지겠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소청과를 자랑스러워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기초 공사를 해두는 것이 먼저이지 숫자만 늘려서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의대 정원 확대는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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