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삶에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치유의 인문학] 삶에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 승인 2023.11.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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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나는 가끔 삶이란 무대에서 어떤 배역과 역할을 맡고 살고 있는지 자문한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무대에 모두가 주연이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린다. 엄청난 긍정이다.

유명한 배우든 그렇지 않는 배우든 배우의 숙명은 연기다. 때론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론 악역을 맡기도 한다. 절대 선, 절대 악의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기운 배역은 연기의 폭을 위축시키고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는데 방해가 된다. 결국 배우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희‧노‧애‧락 등 다양한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깊이와 기막히게 닮아있다.

배우가 잘생기고 아름답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때론 그것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배우가 평범하게 생겼다는 것은 분명 축복은 아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는 못한다. 축복에는 항상 무거운 책임이 따르고 평범은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세상에 모든 배우들은 큰 배역을 기대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준비 없이 맞이한 큰 배역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작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참 공평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참 공정하다. 작은 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비극(悲劇)이지만, 큰 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희극(喜劇)이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영상 속 주인공들만 보기 때문이고,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영상 속 엑스트라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큰 배우와 크게 될 배우는 큰 배역이든 작은 배역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미친 존재감' '미친 연기력' '넘볼 수 없는 아우라' '넘치는 카리스마'등의 수식어는 세상 사람들이 연기 달인에게 보내는 찬사다. '외모만으로 승부하는 배우'란 말은 큰 배우의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실망스럽다는 뜻의 드러냄이다. 이 말에는 한 번 더 기대를 하겠다는 기대심리와 한번만 더 실망하면 돌아서겠다는 경고의 의미가 모두 담겨져 있다. 이런 평가를 받은 배우는 십중팔구 다음 연기에 뼈를 깎는 연기 변신을 하고 온다. 세상에 그저 얻어지는 영광이란 없다.

가끔 우리는 평범한 외모지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그들의 성공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연기의 달인'이란 소리는 그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성동일과 라미란 같은 배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이미 큰 배우가 되었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진 탄탄한 실력과 다양한 캐릭터들을 소화한 가공할 내공, 그리고 평범하기에 더욱 비범하게 보여야할 몰입의 연기력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그들에게 평범함은 대배우가 되는 디딤돌이었다.

선과 악의 경계를 고민했던 문명인 제이크 설리. 영화 '아바타'에서 그는 원주민과 미래인류 사이를 고민하다 자연인 제이크 설리를 선택한다. 나비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훈련한 대부분은 자연과의 '교감'을 위한 노력이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창조한 미래의 인간형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을 품을 수 있고 동물과 식물과도 기꺼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인간을 원했던 건 아닐까? 제이크 설리의 모습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치히로를 읽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에 등장하는 오스카 쉰들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다. 그런 쉰들러가 내 안에 순수를 발견하는 순간 찾아 낸 이타심의 에너지는 영화 '패치아담스'에서 패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연결된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계를 구하는 것과 같다.' 탈무드 경전의 말처럼 쉰들러와 패치가 만난 내 안의 신성(神聖)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고귀한 첫 번째 선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신성은 갈구하고 찾는 자의 몫이다.

탈출할 수 없는 거대한 절망의 영화 '쇼생크탈출'의 앤디는 또 어떤가? 그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군이 가지고 있다. 앤디의 절망과 막시무스의 절망은 모양과 색깔까지 닮았다. 앤디와 막시무스에게 '생존의 이유'는 그들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삶의 의미'다. '생존의 이유'가 분명하고 '삶의 의미'가 명확한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플랭크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의 홀로코스트에서 이 소중한 가치를 찾았다. '가까이 보이는 시련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축복이다.' 소줏집 낡은 벽 밑에 누군가가 써놓은 삐뚤한 문장도 가끔은 명언일 때가 있다. 고난 속에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은 낙서도 어록이 된다.

마음이란 낙하산과 같다. 완전히 펼쳐졌을 때만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의 양도 나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말은 하버드대학 탈벤 샤하르 교수가 행복 6계명에서 한 말이다. 가진 것 없고 모두들 무섭다고 피하는 아웃사이더들의 영화 '박하사탕'의 홍종두도 사랑을 한다. 비록 남들이 비아냥거리고 웃더라도 한공주와 나눈 그들의 사랑은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정직하고 아름답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랑은 직선이지 않고 곡선이라 참 다행스럽다. 화려한 사랑 안에 사랑이 차갑고 초라한 사랑 안에 사랑이 뜨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래서 사랑은 주관적이다. 사랑은 모양이 서로 다른 바퀴가 완전하게 맞물려야 온전하게 돌아가는 합의 원리를 갖고 있다.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 사랑은 벽이 없다. 사랑은 한계가 없다. 한계를 갖고 사는 인간에게 사랑은 신이 주신 완전한 선물이다.

누구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쳐본 적 있던가? 그래본 사람은 안다. 나누고 베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자신을 불꽃같이 태우며 살아본 적 있던가? 그래본 사람은 안다.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해가 아침을 밝히는 게 일상이라면 사람은 세상을 밝히는 게 일상이다. 깊은 밤에도 소망의 나뭇가지를 뻗어 부지런히 달빛을 건져 올리는 한 그루 나무처럼…, 겨울밤 속살거리는 갈바람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온 새끼 고양이의 감촉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내일의 나를 준비한다. 나를 위한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나'이고,
내 생애 최고의 명대사는 '지금'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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