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 & 때문
덕분 & 때문
  • 여인호
  • 승인 2023.11.20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칭찬은 앞에 분들이 많이 하셨기 때문에…칭찬은 하지 않겠습니다. 학습량이 너무 많아서 줄이라고 했는데, 하나도 고친 흔적이 없습니다. 그 많은 양을 한 시간에 다 하려니 주마간산식의 수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호는 대구교대 2학년이었던 1982년 6월 7일부터 7월 16일까지 6주 동안 대구중앙국민학교에서 교육실습을 했습니다. 영호는 실습 마지막 주에 400여 명 앞에서 국어과 갑종수업을 했습니다. 앞의 내용은 대구교대 국어과 김문웅 교수님의 지도조언입니다. 10분 이상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말씀 그대로 칭찬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호의 일생에서 가장 신랄한 꾸중을 들은 날입니다.

그날부터 김문웅 교수님의 말씀은 때문이 되었습니다. 때문의 의미로 쓴 일기입니다. “수업협의회를 하는데 친구(교생)들이 좋은 말로 칭찬을 해주었다. 손숙희 선생님도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는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문웅 교수님이 좋은 기분을 다 망쳐놓았다. 칭찬이나 격려는 한 말씀도 않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람으로 일관하셨다. 그동안 나름대로 수업을 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고 기분이 나쁠까? 이게 다 김문웅 교수님 때문일 거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문웅 교수님의 말씀은 때문에서 덕분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덕분의 의미로 쓴 일기입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수업을 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김문웅 교수님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했다. 내가 미워서 그런 것일까? 고치라고 한 것을 고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작정을 한 것일까?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하듯이, 교수님은 칭찬을 나무람으로 대신한 것일 거야. 그래 그렇게 믿어보자. 영호야! 오늘 힘들었지! 수고가 많았구나! 앞으로 좋은 일 있으면 다 김문웅 교수님 덕분일 거야!”

대구매천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끔씩 김문웅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도 덕분보다는 때문이었습니다. 몇 학교를 거치면서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초등국어교육 공부를 하고 수업발표대회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김문웅 교수님의 말씀은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교원이나 교육전문직원, 교생 등을 대상으로 수업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부터는 김문웅 교수님의 말씀은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때문과 덕분이었습니다.

영호는 2023년 8월 31일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한 지 2개월이 지났습니다. 40여 년 동안 과다한 업무, 학부모의 민원이나 수업에 대한 고민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었던 동료, 함께 배움을 즐겼던 학생,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던 학부모 등 많은 분들의 성원 덕분에 깔끔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가네의 장남을 응원한 부모님과 5남매, 아내의 내조 덕분이기도 합니다. 치밀하지만 느긋하고 때문보다는 덕분을 더 많이 생각한 영호의 몫도 있습니다.

이제 영호는 화양연화의 머슴(대표)으로 세 가지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포도와 복숭아를 키우는 초보 농부입니다. 고향 마을에서 포도농사의 권위자인 이장님과 복숭아 농사를 짓는 형님들 덕분에 조금씩 일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틈틈이 진솔한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에 응원을 해주는 독자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김가네 맛꼬방의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의 나눔입니다. 인정 많은 누님들과 부지런한 동생, 총사령관 역할을 하는 아내 덕분에 김가네 맛꼬방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덕분’은 명사로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의 뜻으로 덕, 덕윤, 덕택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때문’은 의존 명사로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의 뜻입니다. 똑같은 말이나 일도 덕분과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덕분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때문은 부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덕분과 때문의 선택은 개개인의 몫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오늘 하루도 때문보다는 덕분이 많은 날이기를 소망합니다.



김영호 <(전) 대구교육대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