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자서전 쓰기, 신노년의 성찰과 통합을 위한 여정
[화요칼럼] 자서전 쓰기, 신노년의 성찰과 통합을 위한 여정
  • 승인 2023.11.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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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문학박사·희망정원사

당신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의 운명을

개선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B.브레히트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진솔하게 글을 쓰는 일은, 한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다. 개인의 기록은 자신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매우 뜻깊은 일이며 의미 있는 유산이다.

나를 기록하는 즐거움과 과거를 추억하는 여정인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우리 지역사회 돌봄센터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 범물복지관에서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진자서전 쓰기, ‘돌아보니 ‘봄’ 이더라’>이다.

지역사회 돌봄센터 설립 취지를 살펴보면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 도모와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하여 적극적 보호와 개입을 통하여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유기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각종 지역사회 돌봄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대학의 위상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기관 운영 특성에 따라 우선 돌봄 대상 가운데 모셔진 참여자 8명은 평균 연령 82.3세라는 숫자를 무색하게 만드는 신노년층이었다.

‘신노년층’이란 기존의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노인 의 이미지를 탈피해 여가와 취미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성을 갖춘 세대이다. ‘신노년 문화’ 정립을 위해 미국에서는 1998년 로우와 칸이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라는 개념을 내세워 노년기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 왔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이후 ‘신노년층’과 ‘신노년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 협회가 전개하고 있는 신노년문화 운동에서는 ‘공헌하는’, ‘자립하는’, ‘존경받는’, ‘지혜로운’ 노인을 바람직한 신노년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사진자서전 쓰기 프로그램 봉사자로 참석한 70대 초반의 한 참가자는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시대에 유아기를 보내고, 한국전쟁이라는 6.25 동란을 겪으며 참담한 어린시절을 보낸 선배들인 만큼 그들에게 지금의 자서전 쓰기 활동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남은 여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행복한 설계를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참가 의도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신노년문화를 이룩하려면 경제적인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공적 노화’ 개념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노화의 성공을 평가하기 때문에 성찰적인 노년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노년문화’란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향유되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바람직한 신노년문화를 위해서는 금전적 여유의 확보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성 확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신노년문화는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누구나 염려하는 수동적이고 고통스러운 노년기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활기차며 보다 긍정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른으로서 자기주장이 있고,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으며, 자신의 개성있는 라이프스타일과 향유되는 문화일 것이다.

신노년문화는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취미활동, 평생교육, 사회봉사는 물론이고 시민사회활동 등이 있다. 본인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참여하면서 자기를 개발하고 향유하며 치유의 힘까지 얻는 영역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바로 기록으로서, 그리고 치유의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인 자서전 쓰기를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과거로부터 하루하루의 일상을 기록하는 자서전 쓰기는 기록이며, 어제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치유해 가는 과정인 이야기 놀이이다.

모두의 삶이 그렇듯,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고, 하루 하루를 모아 일생을 다한 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개인의 삶들이 만나 그 시대 사회의 하루가 되듯, 가치 없어 보이는 개인의 삶이 한 시대의 기록이 된다. 그런데 기록하지 않으면 그 시대의 하루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존재의 가치를 갖게 된다. 개인의 삶, 개인의 기록을 조금만 확장시키면 그것이 바로 역사이다.

평균 연령 82.3세인 선배들의 인생을 듣고, 읽고, 함께 적으며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만나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집살이를 보내야 하는 엄마, 땅끝마을에서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엄마를 찾아 길을 헤메는 소녀를 만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차마 어디에도 내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그들은 자서전 쓰기를 통해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어제의 것들을 위로하고, 내일을 향해 오늘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며 까만 밤을 하얗게 지핀 후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건져올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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