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3)
[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3)
  • 승인 2023.11.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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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며 부모가 교육을 해야 하는 의무감을 지우는 것도 싫었고,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굳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며 공감과 존중을 하는 밥상대화가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효과를 준다고 하지만, 홍희는 아버지와의 밥상이 떠오르며 나쁜 방향으로 꼬여 있는 자신을 본다.

아버지는 원래 밥상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열두 살 때까지는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아랫방에서 엄마와 따로 먹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엄마와 홍희, 세 명이 같이 밥을 먹었다. 동그란 철제 밥상을 세 명이 빙 둘러싸고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특별히 맛있는 반찬도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저 밥과 반찬을 집어 먹으며 각자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홍희는 그 침묵이 싫었지만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 몰랐다. 다른 집에 살다가 같이 살게 된 부모와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는 게 중요하고, 가족을 식구라고 불렀나 보다.

아버지는 술이 취해 집에 돌아와서는 말을 많이 했다. 공부, 품행, 언니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홍희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고 하는 말이 좋았지만,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으면 좋겠고, 일방향 말이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술을 마셨을 때만 이런 이야기를 할까. 술을 마신 아버지의 말은 술주정 같았다. 새겨듣거나 기억하기 보다는 듣기 싫었고 아버지가 싫었다. 좋은 이야기를 평상시에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런 아버지를 원했다. 반찬이 맛이 없어도 기분 좋게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왜 아버지는 평소에는 그러지 못하고 왜 이렇게 술을 마셨을 때만 이런 이야기를 할까.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간신히 참고 있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밥상을 들어서 엎었다. 순식간에 일어났다. 엄마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죄없는 엄마는 어찌할 줄 몰랐고, 홍희는 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혼자서 성질을 내며 식식 댔다. 아버지의 분노가 이리저리 날뛰는 것처럼 그릇들도 여기저기 튕겨쳐나가 반찬을 집어던졌다. 방바닥 위로 핏물같은 고추장과 엄마의 눈물같은 시커먼 간장과 홍희의 어두운 뇌같은 된장이 처참하게 떨어져 있었다.

홍희는 해사하게 웃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왜 그 해사한 웃음을 버리고 폭군같은 모습으로 집을 아수라장을 만드는지 분노와 슬픔이 같이 울렁거리며 속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울면 아버지가 더 화가 나서 손찌검이라도 할 것 같았고, 엄마의 화를 돋굴 것 같았다. 그냥 숨죽이며 아버지와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는 분을 풀었는지 더 이상의 행동과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쓴 쑥을 입에 넣은 듯 찡그린 표정과 일자로 다문 입술로 그릇을 주워담았다. 홍희는 어지러진 방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뒤에 큰 일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랬다. 평소처럼 잠을 잔 것 같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엄마의 흐느낌을 들은 것도 같다. 홍희도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누운 채로 날아다녔다. 뭔가가 자꾸 홍희를 잡아당기고, 홍희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잘 나가지 않아서 앉아서 썰매를 탈 때 엉덩이를 밀어 미끄러져가듯 엉덩이를 계속 들썩거렸다. 자유롭게 훨훨 파란 하늘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ㅤ쫓기는 상태에서 도망치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해사한 웃음으로 뜨락 위 마루에 않아 있었고, 홍희는 안도감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꼈다. 원래 좋아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만큼 증오가 이미 커다랗게 자랐음을 느꼈다. 아버지는 홍희의 마음을 알까 모를까. 아마 그 날부터 지금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애증의 감정이 시작된 그 날의 충격을. 다행히 그 뒤로는 그 날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장에 가시거나, 이웃집에 놀러 가서 술을 마시는 날은 홍희도 엄마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 그 날은 아버지의 해사한 웃음은 없는 날이었다. 배고픔과 정서적 허기를 함께 느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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