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겨울 아침에
[대구논단] 겨울 아침에
  • 승인 2023.11.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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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노인들에게는 겨울이 치명적인 계절이다. 겨울이 되면 노인들은 젊은이들보다 추위를 많이 탄다. 근육이 줄어들거나 피부가 엷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열을 내는 동력 자원은 근육이다. 체열의 40% 이상이 근육이 활발하게 수축·이완하며 움직일 때 만들어진다. 노인들은 근육이 젊은이보다 부족해 추위를 잘 탄다. 겨울 한파는 노인들에게 체온 유지 능력을 떨어지게 해 저체온증을 유발한다. 저체온증은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또 갑자기 오는 기온 변화는 혈압을 상승하게 해 심근경색 등 심뇌혈관 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

겨울철에는 노인들이 낙상 사고를 많이 당한다. 낙상사고로 인한 입원율과 사망률 또한 매우 높다. 젊은이들과 비교했을 때 낙상으로 인한 사망률은 10배, 병원 입원율은 8배나 된다. 그리고 오랜 입원과 치료는 치료 이후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낙상 사고로 병원을 찾는 노인의 20~30%는 뇌출혈 또는 엉덩이뼈 골절로 고생한다. 낙상을 경험한 많은 노인들은 다시 넘어져 다칠까 봐 잘 움직이려 하지 않아 근육이 더 약해져 건강은 더 악화된다. 옛날부터 ‘노인은 한 번 누우면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낙상이나 허리 병으로 누우면 황천길로 간다는 것이다. 겨울 한파에서 오는 각종 질병과 낙상사고 등을 걱정해야 하는 겨울은 노인에게 매우 힘든 계절이다. 관계 당국에서 겨울에 노인들에게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겨울 아침을 맞는 노인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쟁, 피란, 배고픔, 경제개발, 근대화, 민주화를 위해 바쳤던 정열들이 허무함이었음을 알고 잃어버린 시간을 반추한다.

옛날에는 추위가 닥쳐올 때 노인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잔치를 많이 열었었다. ‘치계미’도 그중 하나다. 치계미는 입동, 동지, 섣달그믐날 밤에 마을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 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했다.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도랑 탕(湯)’으로 잔치로 대신했다. 도랑에서 겨울잠을 자는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에게 접대하는 것이 도랑 탕이다. 치계미란 원래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주는 뇌물을 말한다.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한다는 의미이다.

나라에서도 노인을 위한 행사를 마련했다. 10월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조선시대 노인을 예우하기 위한 관청)에서는 나이 많은 신하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 풍속이 민간에게까지 전해져 마을에서 귀한 우유를 구해 마을 노인들에게 대접하면서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요사이도 사회단체에서 겨울을 맞아 각종 행사를 한다. 감동이 없는 일회성 행사이고, 보이기 위한 행사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 존중은 고사하고 노인 경시 풍조가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만원이다. 한 참 두리번거리던 할머니가 투덜댔다. ‘어른들이 서 있어도 젊은 사람들은 본 체도 안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보다 좀 더 적나라한 사례가 있다. 특정 정당을 비판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20대·30대들의 무대다.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투표 날 집에 쉬셔도 된다’ ‘늙은 교사 한 명을 내보내면 젊은 교사 세 사람을 쓸 수 있다’ ‘60세가 넘으면 뇌세포가 썩어 과거의 능력이 있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노인들은 미래 살날에 비해 투표권에 차등을 둬야 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속 깊은(?) 말씀들이다. 자기 집단의 조그마한 이득을 위해 툭 내던진 말들이 노인들을 점점 더 비참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백발의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노인이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젊은 택배기사가 차를 멈추고 뛰어갔다. 택배기사는 노인을 부축하고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신호대기를 하던 차량이 이들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비상등을 켰다. 누구 하나 갈 길이 바쁘다고 클랙슨을 울리지 않았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게 하는 아름다운 베풂이다.

아무튼 겨울 아침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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