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가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자
[치유의 인문학] 가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자
  • 승인 2023.11.30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가끔, 거인의 어깨위에서 세상을 본다.힘들고 외롭게 타지에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견뎠던 줄 없고 '빽'없던 시절을 떠올리면 거인의 존재는 나를 위로한 유일한 친구이자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나온다. 이순신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며 하는 독서라고 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영화는 두 가지 모두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여러분처럼 외롭고 고달팠던 시절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인의 마음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이순신은 나의 구루이며 거인이다. 거인의 발자취를 통해 나의 고독을 위로 받는다.
외로운 남도…, 임지에서 보낸 이순신의 8년은 역사와 운명이 만든 자발적 유배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이순신은 없었다. 마흔이 넘도록 주연은커녕 조연의 역할도 맡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고 중용하지 않았다. 당쟁과 오만에 빠져버린 위정자들이 만든 왜곡된 역사에 정의로운 자의 심지는 쓸모없는 불쏘시게였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이순신이 맡은 배역은 비록 작았지만 결코 자신의 역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중용 23장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할 뿐이었다.
조선은 건국 이래 당쟁과 사화는 많았지만 전란은 없었다. 200년 가까이 이어진 전란 없는 혼란의 정국은 사람들의 이성을 비틀어 놓았다. 혹시나 모를 전쟁에 대비하라는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도 백성들의 혼란과 불편함을 가중 시킨다며 무산 시켰다. 끊어진 현실감각의 절정이다. 연이어 보고되던 왜란의 징조도 파견 보낸 세 명의 통신사가 서로 다른 내용으로 보고를 하는 바람에 혼란만 더욱 가중시켰다. 선조는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채택했다. 바램을 현실로 받아들인 선조와 조정의 안이함이 도를 넘었다. 한 가지 위안을 한다면 선조의 예민한 성격을 자극하지 않으며 조용한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위로할 뿐이다. 조용하게 준비하는 전쟁은 없다. 전쟁의 허상을 끌어안고 살고 있던 위정자들에게 다가온 전쟁의 현실은 차갑고 잔인했다.
전선은 초장부터 깨졌다.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무너진 전선마다 주검이 넘쳤다. 산자와 죽은 자의 구분이 없었고 의미도 없었다. 산자들도 시간이 지나 곧 죽은 자가 되었다. 재난을 대비하지 않은 자들의 자상(刺傷)은 생각보다 컸다. 죽는 자의 비명과 산자들의 울음이 조선 팔도를 흔들었다. 울음은 깊었고 시간은 길었다. 1592, 임진년(壬辰年) 잔인한 4월의 여름과 1598, 무술년(戊戌年) 차가운 11월의 겨울은 전쟁의 시작과 끝이다. 그 치열했던 운명의 시간에 영웅은 등장했고 또한 사라졌다. 장군의 등장과 존재가 마치 그 전쟁을 위해 준비된 준비 안 된 조선의 유일한 준비처럼 말이다.
영화 <명량, 2014>은 전쟁의 처음과 끝의 중간에 일어났던 가장 드라마틱한 전쟁이었다. 한산대첩이 '화려한 불꽃'이라면 노량해전은 '불타는 노을'이고 명량대첩은 '작열하는 태양'이다. 한산대첩이 푸치니의 '네순도르마'라면 노량해전은 베토벤의 '운명'이고 명량대첩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다'다. 작열하는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카르미나 부라다의 선율처럼 명량의 싸움은 조선의 운명을 건 마지막 불꽃같은 전투였다.
두 달 전 칠천량(경남 거제시 앞 바다)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괴멸했다. 모든 걸 잃어버린 조선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촛불이었다. 조선 수군을 파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선조에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라는 장계를 올려 운명의 전쟁을 준비한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중심으로 한 전쟁 직전의 모습과 당시 전쟁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렸다. 기존 영화들이 보여 준 영웅담의 스토리 위주가 아닌 절대위기의 전쟁터에서 한 장수가 직면해야 할 감정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렸다. 영웅의 모습이 아닌 풍찬노숙(風餐露宿) 고뇌하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13대 133, 13대 300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 그 숫자들이 장군의 위대함을 다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영화 '명량'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장군의 전적과 승리의 스토리가 아니다. 절대적 수세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장군의 평정심은 무엇이었나? 수군들을 어떻게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었던가? 어떻게 정보를 입수하고 조직을 관리했던가? 23번의 전투에서 보여준 이순신의 전술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군의 삶을 관통한 '무의 정신'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영화는 '명량'을 그리고 있지만 '명량'을 통해서 이순신의 본질을 만난다.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감동대신 먹먹함이 밀려온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이 일어난 전적지를 모두 방문했다. 땅으로 밟아 보고 싶었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다. 어떻게 책상머리에서 감히 그 분의 행적을 쫓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삶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거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읽어보라. 자존감이 떨어져 삶의 의욕을 잃었다면 『이충무공 행록(行錄)』을 읽어보라. 길 위에서 인문학을 느끼고 싶다면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어보라. 한 편의 영화로 존재의 이유를 느끼고 싶다면 영화 '명량'을 보라. 이순신의 존재는 삶의 이정표이자 고단한 삶의 치료제다. 그 분의 삶을 몸으로 느끼고자 장군께서 입었던 무관의 공복 '천릭(天翼)'을 25년 째 입고 있다. 장수로써의 기상을 느껴보기 위해 22년 전 장군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 놓았다. 이러한 모든 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온전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분은 오직 '행동하는 정의'에 있고 홀로 있을 때 삼가는 정신 '무자기(毋自欺)'의 정신 속에서 그 분을 만날 뿐이었다.
영화 '명량' '한산' '노량'은 '행동하는 정의'와 '무자기' 정신의 완결판이다.
거인의 어깨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