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이 엽서 같다고 하자
편지를 쓸 만큼 따가라고 한다
늦가을 햇살에 한 잎씩 씻어
물기 뺀 자음과 모음을 소쿠리에 담으며
눈여겨보지 않은 시간 들 다 놓치고
간추리고 걸러내고 잘 지내느냐고 한 줄 쓰고 나니
부랑의 날들 한뎃잠을 자듯 얼키고 설킨다
은닉하듯 쌓아둔 숙제에 배를 쭉 깔던 지난여름
깻잎처럼 차곡차곡 개켜진 공책의 침묵은 무뎌서
증거를 인멸하듯 연필이 부러지고
표류하던 생각의 거짓 진술에 공책은 찢어지고
고스란히 가라앉은 날것의 향
오래 삭혀 깊은 맛을 낼까
은유의 양념으로 초록의 입맛을 돋울까
고민은 오타 없는 잠에도 따라와
윗목에 밀어둔 숙제처럼
초록의 공책을 뒤적인다
◇이명열= 200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양철 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가 있음.
<해설> 그러니까, 시인에겐 깻잎도 시가 되는가 보다. 아니 시가 되기 전의 그 무엇도 된다. 엽서를 연상하는데 편지를 쓸 만큼 따 가라 하고 결국엔 낱장들이 모여 공책이 되는 것은, 시인의 상상력 때문이다. 깻잎이 갖는 향기는 결국 깨밭을 가꾼 주인 종만 씨의 넉넉한 마음 덕택은 아닐까? “늦가을 햇살에 한 잎씩 씻어/ 물기 뺀 자음과 모음을 소쿠리에 담으며/ 눈여겨보지 않은 시간 들 다 놓치고/ 간추리고 걸러내고 잘 지내느냐고 한 줄 쓰고 나니” 의 시인 행위의 나열은 은유의 양념으로 초록 입맛을 돋우고 있다. 또한 깻잎은 부서져 사라지더라도 고소한 그의 시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는 일에 입맛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리움의 맛으로 찾아들기도 할 테니.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