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구룡동 641번지 종만이네 들깨밭
[좋은 시를 찾아서] 구룡동 641번지 종만이네 들깨밭
  • 승인 2023.11.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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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열 시인

깻잎이 엽서 같다고 하자

편지를 쓸 만큼 따가라고 한다

늦가을 햇살에 한 잎씩 씻어

물기 뺀 자음과 모음을 소쿠리에 담으며

눈여겨보지 않은 시간 들 다 놓치고

간추리고 걸러내고 잘 지내느냐고 한 줄 쓰고 나니

부랑의 날들 한뎃잠을 자듯 얼키고 설킨다

은닉하듯 쌓아둔 숙제에 배를 쭉 깔던 지난여름

깻잎처럼 차곡차곡 개켜진 공책의 침묵은 무뎌서

증거를 인멸하듯 연필이 부러지고

표류하던 생각의 거짓 진술에 공책은 찢어지고

고스란히 가라앉은 날것의 향

오래 삭혀 깊은 맛을 낼까

은유의 양념으로 초록의 입맛을 돋울까

고민은 오타 없는 잠에도 따라와

윗목에 밀어둔 숙제처럼

초록의 공책을 뒤적인다

◇이명열= 200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양철 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가 있음.

<해설> 그러니까, 시인에겐 깻잎도 시가 되는가 보다. 아니 시가 되기 전의 그 무엇도 된다. 엽서를 연상하는데 편지를 쓸 만큼 따 가라 하고 결국엔 낱장들이 모여 공책이 되는 것은, 시인의 상상력 때문이다. 깻잎이 갖는 향기는 결국 깨밭을 가꾼 주인 종만 씨의 넉넉한 마음 덕택은 아닐까? “늦가을 햇살에 한 잎씩 씻어/ 물기 뺀 자음과 모음을 소쿠리에 담으며/ 눈여겨보지 않은 시간 들 다 놓치고/ 간추리고 걸러내고 잘 지내느냐고 한 줄 쓰고 나니” 의 시인 행위의 나열은 은유의 양념으로 초록 입맛을 돋우고 있다. 또한 깻잎은 부서져 사라지더라도 고소한 그의 시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는 일에 입맛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리움의 맛으로 찾아들기도 할 테니.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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