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앉는 순간
창문이라는 거주가 시작되었다
배워본 적 없는 오토바이는
퀵서비스의 속도로 멀어지는 행성이어서
황급히 달리며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주꾸미 먹물같이 관측이 불가능했던 일상들
비탈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풍경을 자르면 취향이 사라졌다
옥탑방은 구글지도에 없는 풍경이어서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방지 턱을 보지 못해
굴러떨어진 뼈를 주우며
우리는 이동하는 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키드마크가 희미해지기 전에
전파망원경 밖으로 멀어지기 전에
행성이라는 포장에서 나를 꺼내야 했다
◇김춘리=춘천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모자속의 말’,‘평면과 큐브와 공동시집 ‘언어의 시, 시와 언어’. 2012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경기문화재단 문예지원금,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 지원 사업,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 선정.
<해설> 자신은 빛을 내지 못하지만, 중심이 되지 못하는 별을 따라 도는 별들이 행성이다. 지구도 그런 행성의 하나이다. 시인은 그런 행성에서 중심의 별이 되지 못한다면 독립된 탈출을 꿈꾸는 자일지도 모른다. 일정한 괘도 순환의 틀에서 벗어나는 어떤 계기란 삶의 난데없는 변화를 겪게 되면서 시작된다. 어디로 튈지는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김춘리 시인은 과거 여성 사업가로 잘나가던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어느 순간 사업이 아닌 시업으로 펄쩍 건너뛰었을 때 멀찌감치서 난 걱정과 우려가 컸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안락하고 커다란 집에서 옥탑방으로 건너뛸 때의 심정이 이 시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대단한 여장부다운 스케일이 있음에도 반면 섬세한 여성의 감정이 잘 버무려진 시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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