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버겁던 짐 다 내려놓고
타이어도 튜브도
안장도 짐받이도 떨어져 나간 채
고향 집 앵매기 집 짓는 헛간
구석에 처박혀
예산장, 홍성장, 삽다리장,
새벽안개 가르며 씽씽
내달리던
푸른 시절, 푸른 날들 추억하다가
장꽝에
감꽃 구르는 소리-
가슴 허무는
아버지의 짐 자전거
◇김용화=1953년 충남 예산 응봉 출생. 1993년 계간 시 전문지 ‘시와시학’가을호 신인 작품 당선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는 힘이 세다’, ‘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루루를 위한 세레나데’, ‘먼길’ (근간)이 있음. 시와시학상 수상.
<해설> 낡아 버려진 짐바리 자전거는 시인의 기억 속에서 이미 아버지와 동일화되었다. 자전거를 구성하던 부품들은 다 떨어져 나갔어도 자전거는 자전거이다. 그냥은 내다 버릴 수 없었던 건 아버지가 끌고 다닌 그 무수한 길의 거리가 식구들의 밥줄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장꽝에/ 감꽃 구르는 소리-// 가슴 허무는/ 아버지의 짐 자전거”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자전거가 감꽃 떨어져 구르자 또 한해가 굴러가는 소리에 퍼뜩 놀라고 있음을 알아챈다. 시인은 늘 이야기를 짧은 형식에 담으면서도 시각의 앵글을 서정과 전통적인 정한에 두는 서정의 한 장르를 고집하려는 게 시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타이어도 튜브도 안장도 짐받이도 떨어져 나간 채 아버지는 어쩌면 무덤 속에서 삭아가고 있는 것을 보는 듯, 낡은 짐자전거의 비유는 처연해서 서글프도록 아름답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