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웃음
  • 승인 2023.12.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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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웃음이 적어졌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들이 양자로 나가고, 막내아들이었던 아버지가 장남이 되어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품성이 악하거나 거칠지가 않아서 할머니를 대할 때는 꽤나 순종적이었다. 깔끔한 외모에 말도 잘 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정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계시고 돈이 풍족해서 공부를 했다면 잘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를 못했다. 초등학교만 나왔다. 그래서 농부말고는 다른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

홍희가 초등학교4학년쯤, 옆집 상희가 대구로 이사간다고 했다. 홍희도 대구로 이사가고 싶었다. 도시로 가서 사는 것이 농촌에서 사는 것보다 좋을 것 같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대구로 이사가는 것에 찬성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사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자신이 살던 곳과 친구들을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특히나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것이 염려되는 것 같았다.

농촌에서는 자녀 교육비 외에는 걱정할 것은 없었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농사이외에 특별한 기술이 없던 몸이 약한 아버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도시로 이사가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엄마는 토를 달지 않았다. 엄마가 혼자 밀고 나갈 자신과 계획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홍희는 대구로 이사를 가지 못했고 중학교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급격히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았다. 힘든 농사일에도 자식농사에도 할머니는 버팀목이 되어 아버지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형들이 있으나 남이 된 상태, 누나와 여동생은 시집을 갔으나 혼자가 된 상태. 농사일은 힘에 부치고,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빚이 있는 상태.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고 돈이 필요한 상태.

아버지는 마음이 외로울 때 기댈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을까.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없는 집이 텅빈 것 같앗을까. 그래서 일찍 집으로 돌아오기 싫었을까.

아버지의 ‘그 밤’ 일이 일어난 이후부터 홍희는 아버지에게 애증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를 때 더 싫어하게 된 마음. 좋아했던 만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는 상태. 좋아하고 싶은데 좋아할 수 없는 상태. 좋아하지만 미워하는 정반대의 감정이 뒤섞여 있을 때 상대방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고,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없다. 온전히 주면 좋아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둘 다 가기 때문에 어느정도 마음을 닫아 둔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마주하면 외롭다.

홍희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계속 좋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좋아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좋아했다. 완벽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 욕심이다. 그래도 더 나은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이길 어린 홍희는 간절히 바랬다.

그 밤이 지난 아침 해사한 웃음만 짓지말고 홍희에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홍희의 미운 감정이 해소됐을까. 그래서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아버지를 대할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어서 홍희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홍희의 꼬인 감정을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지 못했다. 멀리 떨어졌고 멀어지고 싶엇다. 그러나 헛헛한 마음이 들 때마다 생각나는 곳도 아버지였고 엄마였다.

아버지의 환하고 해사한 웃음을 보고 미운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지나서였다. 한 달동안 밥도 거의 먹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많이 울었다.

한 달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꿈에 하얀 모시옷을 입고 처음에 좋아했던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이제는 날 미워하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슬퍼하지 마라. 나는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고 있다. 너도 행복하게 살아라.

홍희는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홍희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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