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강 언덕에 앉아
발아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네.
쓸데없이 말을 수없이 지껄여온 나의 입가에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아 온 나의 눈자위에
들을 것 듣지 않아도 될 것 다 들어 온 나의 귓가에
맑고 푸른 강물을 스쳐 온 맑은 바람이
나의 이목구비를 씻어 주네.
아무것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하고
아무것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으며 지나온 세월이
맑고 푸른 강물에 휘살지으며 흘러가네.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강물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세월
바람 부는 강언덕에 앉아
언젠가 한 번은 바람에 씻겨 갈
육신이 앉아 있네.
◇박종해=1968년 울산문협회원. 198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울산문협회장, 북구문화원장,울산예총회장 역임. 이상화 시인상외 다수. 시집 13권, 번역시집 2권 출간.
<해설> 흘러가는 것이 전제될 때 강이 된다. 흐름을 막으면 호수가 되지만 강은 어머니의 젖줄처럼 흐르면서 절벽을 치고 모래사장을 만들며 여러 풀과 군락의 버드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하는 것이다. 무수한 철새 떼에게도 거처를 내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강은 흘러서 이미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시인은 훤히 꿰뚫어 알고 있다. 오랜 연조를 가진 시인이기도 하거니와 시인은 지금 바람 부는 강 언덕 위에 나와 앉아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뱉은 말과 못 볼 걸 본 눈동자와 어지러운 귀를 시인은 바람에 씻어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인데, 강은 마치 세월이 짜낸 연고처럼 온갖 상처들을 아물게 하고 있다. 이쯤이면 시인의 강은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강이다. 세월이다. 이제 남은 것은 조용히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마음을 강물로 다스리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