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남산만 한 빌딩 하나 없어도
봉제산 아래 하늘 해, 산들바람
잘 드나드는 내 집이 있어 나는 부자다
태산 같은 큰아들
나의 코디네이터 작은아들
폼생폼사 막내아들이 있어 나는 아들 부자다
내밀한 보물 창고에
재산같이 알알이 쌓이는 보석 같은
추억이 있어 나는 추억 부자다
내 인생 깊은 곳에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차고 넘치는
좋은 글감이 있어 나는 글감 부자다
꼭! 꼭꼭 감추고 싶은
비밀 부자도, 부자라고 우기면
나는 행복한 비밀 부자다
◇백덕순=전남 여수 출생. 2004년 월간한맥문학 시 등단. 계간문예작가회 홍보부장, 창작산맥 부회장, 종로문인협회 홍보부장, 담쟁이 문학회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의 집 서울 회원, 통일문인협회 회원, 강서문인협회 회원. 시집: 꽃지의 연인> 공동작품집 시인부락 외 다수. 수상: 한국문협 서울시문학상, 상상탐구 작가상, 제1회 북한인권문학상, 종로문학상이 있음.
<해설> 시인이 부자인 까닭을 요목조목 친절하게 잘 말해 주고 있는 시이다. 봉제산 아래 볕과 바람 잘 드는 집이 있고, 각각 개성을 지닌 자식이 셋이나 있고, 추억이 있고 마르지 않는 글감이 있어서 시인은 자신을 부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감추고 싶은 비밀까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시인이 진짜 부자인 더 큰 까닭이 되고 있다. 막연한 자랑 너머의 비밀이 메타포로 걸리면서 독자들로 하여 말 못할 어떤 사연 또는 트라우마마저도 소중한 재산임을 시인은 알려 준다. 환갑을 넘겨 살며 내 집 한번 가져보지 못한 나도 그러니까 엄청 부자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연못가에 파라솔 누각을 세우니, 연못 전체가 내 집 정원 아닌가. 기다림의 미학을 낚싯바늘에 꿰어 눈맛을 넘어 손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