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어둠 속의 빛, 빛 속의 어둠
[치유의 인문학] 어둠 속의 빛, 빛 속의 어둠
  • 승인 2023.12.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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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최근 강연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필자의 강의를 듣는 관객들의 눈물이 부쩍 많아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웃는 분들의 숫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우시는 분들의 숫자가 많다. 그렇다고 계속 울게 만드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웃음 속에 눈물이 있고 눈물 속에 웃음도 있다. 그게 진짜 인생이 아닌가? 강연은 결국 강연자의 신념과 경험이 언어로 표현된 작은 감동의 토크콘서트다. 강연도 강연자의 경륜에 따라 언어의 무게가 달라지고 함께 깊어간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세상에 공짜와 비밀과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깊이 공감하시는 분들이다. 행복은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가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비로써 세상을 바르게 읽게 된다. 세상에 단 하나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음을…, 신은 결코 한 사람에게 모든 행복을 다 주지 않음을…. 그리고 그것이 매우 공평한 유스티치아의 저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말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그 사람들 역시 돈 때문에 지위 때문에 권력 때문에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2005년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를 개봉했을 때 사실 필자는 상당히 놀랐다. 상담심리를 전공한 전공자의 입장에서 이런 영화는 파격에 가까운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히어로 영화들이 화려한 영웅의 서사에 집중해 영화를 보는 관객을 흥분시키는데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자칫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침몰하던 배트맨 시리즈를 완벽하게 부활시켰으며 공전의 히트를 치게 했다.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알면 2014년 김한민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명량>의 성공 비결의 비밀도 동시에 풀린다.
과거의 영화들이 영웅들의 화려한 서사에 집중했다면 <배트맨 비긴즈>와 <명량>은 인간 브루스 웨인(배트맨)과 이순신에 집중했다. 더 나아가 그들의 가장 어두운 면, 가장 인간적인 고통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고통을 견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관객의 시선은 바로 그곳에 집중되었다. 그들이 그 어둠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웅의 좌절이 곧 자신들의 실패였고 영웅들의 고통이 곧 자신들의 아픔이었으며 영웅들의 인내는 곧 자신들의 현재모습이었다. 또 영웅들의 부활이 자신들의 부활이었고 영웅들의 승리는 곧 자신들의 미래였기에 스크린 속 영웅의 좌절과 부활은 자신과 하나 되는 교감의 필수조건이었다. 공감은 그렇게 눈물과 환호의 씨줄과 날줄 사이를 타고 왔다. 그 깊은 공감이 영웅이 내가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점이었다.
영웅들의 화려한 서사에 우리가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넘사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다른 유전적 DNA를 가진 외계행성에서 온 별종들을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감히 어떻게 따라 갈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영화 속 영웅들이 위대하지만 공감되지 않는 분명한 이유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하는 영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린 시절 자신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도에게 살해당한다. 눈앞에서 부모의 죽음을 똑똑하게 목격한 어린 브루스 웨인에게 선명한 기억이란 오히려 죽음 같은 트라우마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신화 속 시지포스의 형벌을 평생안고 살아야하는 그는 그 엄청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가혹한 형벌 속에 자신을 던지고 그 죽음의 어둠 속에서 기어코 살아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가둬놓았던 어둠의 공포를 역설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이다. 수많은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 유독 필자가 기억하는 배트맨 시리즈 최고의 명장면도 바로 이 장면이다.
'추락했으면, 올라오는 법을 익히면 된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한 줄의 명대사는 수없이 좌절했던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준 최고의 명언이었다. 히어로 배트맨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그 시절 유일한 나의 위안이었다.
<명량>의 이순신도 마찬가지다. 귀선이 불탈 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오열하는 장군의 수척한 모습, 죽은 동료들이 꿈속에 나와 식은땀을 흘리며 비척거리는 늙은 장군의 모습은 조선의 모든 수군이 괴멸된 현실에서 오직 12척의 배만 가지고 133척의 왜적을 상대해야했던 이순신의 현실적 고통이 아니었을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수십 번 곱씹고 외쳤던 그 주문 같은 신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일본과 중국말 중 하나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이 없지만 말이다.
화려한 이순신 장군의 승전. 23전 23승 이면에 가려진 상처와 트라우마, 노장의 눈물을 보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이순신의 정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1592년 전쟁 초기 사천전투 때 근접거리에서 왜군이 쏜 화승총에 왼쪽 어깨를 맞아 7년 동안 왼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해 칼의 무게를 줄여야했던 장군의 육체적 아픔을 읽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이순신의 고통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빛 속에 어둠을 어둠 속에 빛이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며칠 전 장모님이 소천하셨다. 필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기에 이번만큼은 장모님의 임종을 꼭 지키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9개월을 암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주야로 장모님 곁을 지켰다. 다른 사람들에게 장모님을 맡기지 않으려고 생존에 필요한 일만하고 오롯이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여행, 맛 집 탐방, 장엄한 광경보기 등,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가기 전 대소변은 물론이고 목욕까지 필자의 손에 몸을 맡기셨다. 딸보다 더 사위를 편하게 여기시는 바람에 내 육신의 고단함은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생명의 죽음에 왜 사연이 없겠는가?
의식이 끝나가는 그 순간 자신 삶의 후회를 담담히 털어놓으시는 어머님 앞에 조용히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어머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귀한 분입니다. 저희가 어머님의 딸과 사위로 좋은 인연 맺어주신걸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생명의 빛이 꺼지는 순간 장모님의 눈에 맺힌 눈물은 내 독백의 마지막 응답이었다. 모든 생명에는 빛이 있고 어둠도 함께 존재한다는 걸 마지막 눈물을 통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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