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 무덤 찾아왔네
늘어진 허리 곧추세우고 앉아
낭창 울음 삼키지 못하고 목에 고인
숨 몰아 뱉으며, 카르릉
웅얼거리네
무당이었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내게 찾아와
혓바닥을 동강 내고
내 피를 훔쳐갔지
주술 같은 신음
안을수록 파고드는 손톱
집요하게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믐달 눈빛
허공에 집을 지어도 추락하지 않는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을 피해
무덤으로 숨어들었건만
탐조등 켜 들고 와
나른하게 늘어진 내 지문 핥고 있네
그녀에게서 나, 도망치지 못하겠네.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고병권. 표제 차용.
◇박자경=2000년 <시로 여는 세상> 등단. 시집 『물의 습성』 외 7권이 있음.
<해설> 그믐달 눈빛이 주는 섬뜩함이 고양이 눈으로 환치되면서 나는 이미 유체를 이탈한 체, 그녀를 맞이하고 있다. 그녀는 무당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주검으로부터 나의 한 생 기록을 낱낱이 읽고 있는 것을 내 영혼은 내려다보고 있다.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은 결국 나를 감시하는 눈과 길 이어서 마치 지독한 스토커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이생의 삶이 주는 어떤 갑갑함 혹은 사육되는 느낌, 그 절박함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풀어간 그런 시로 읽힌다. 그녀란 어쩌면 단순한 무당이 아닌 시인 자신 속의 또 다른 자아는 아닐까.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