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농사 그리고 지극정성
수업과 농사 그리고 지극정성
  • 여인호
  • 승인 2023.12.18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호는 경북 김천시 아포읍의 대신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영호 동네는 100여 가구로 초등학교 동기만 남자가 7명, 여자가 13명이었습니다. 전교생은 600명이 넘었습니다. 모교는 2015년에 폐교가 되어서 남은 학생들은 율곡초등학교와 아포초등학교로 분산되었습니다. 지금 80여 가구가 넘는 고향마을에는 초등학생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영호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6학년 국어시간입니다. 담임선생님은 지금도 경북 김천시 개령면에서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김명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국어 시간에 1쪽 정도의 글을 바르게 읽게 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읽지를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읽는 것으로 한 시간의 국어 시간이 끝났습니다. 영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국어 시간이면 소리 내어 읽기를 많이 했습니다. 2023년 8월 29일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으로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호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농사일은 6학년 때 가을걷이입니다. 농토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부모님은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던 권씨네의 농토를 소작했습니다. 소작농은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모든 과정을 다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과 소의 노동력만으로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탈곡 작업은 권씨네 마당에서 했습니다. 오로지 사람이 밟는 힘으로만 작동하는 탈곡기를 하루 종일 돌려서 타작을 마칠 때면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컴컴한 밤에 낟가리를 쌓았습니다. 낟가리가 사람의 키보다 높아지면 아버지가 낟가리에 올라가고 어머니와 영호는 밑에서 짚단을 던져줍니다. 솜씨 좋은 아버지가 낟가리를 다 쌓으면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습니다. 그 별빛을 등불 삼아 개마고원까지 올라가면 고된 소작농의 하루가 끝났습니다. 고향마을은 우리나라 지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영호의 집은 개마고원의 위치와 비슷했습니다. 그 개마고원을 평생 오르내렸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향집에서 가까운 밭 가운데에서 낮에는 해가 되고 밤에는 별과 달이 되었습니다.

영호가 정년퇴직을 하기 전에 근무했던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는 최첨단의 교육시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좋은 수업을 위해서 겸손과 열정으로 일신우일신하고 있습니다. 영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교육환경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 변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김명진 선생님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했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선생님도 간혹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명진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누구나 어떤 생각으로 학생을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생철학이라고 해도 좋고 수업철학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학생들도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배움다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영호가 소작농인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던 때와 지금의 농사는 앞에서 언급한 수업과 같이 천양지차입니다. 소와 사람의 힘으로만 했던 게 완전 기계화가 되어있습니다. 못줄을 넘기면서 한 줄로 선 어머니들이 모를 심던 시대에서 이양기 한 대만 있으면 수백 명의 일손을 감당하는 시대입니다. 웬만한 곳은 드론으로 약을 칩니다. 가을 내내 낫으로 벼를 베고 탈곡을 하던 시대에서 콤바인 몇 대면 며칠 만에 온 들판의 추수가 끝납니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마시멜로 모양의 건초롤(소 사료용 짚 묶음)이 겨울을 기다립니다. 농업이 아무리 기계화가 되어도 농사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자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게 농업입니다.

수업과 농사는 닮은꼴입니다. 수업도 농사도 시대 변화를 반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저 학년을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한 시간의 수업이 모이고 모인 것입니다. 선생님의 정성과 부모님의 애태움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쌀 한 톨이 포도 한 송이가 그저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의 정성과 말 없는 자연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들어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자신과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 23장 치곡에 나오는 말입니다. 수업과 농사, 아니 세상의 모든 일에 지극정성을 생각해 봅니다.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