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자서전 쓰기, 위안과 치유의 인문학 에너지 발견
[화요칼럼] 자서전 쓰기, 위안과 치유의 인문학 에너지 발견
  • 승인 2023.12.1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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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만남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 알렉산더 듀마



가을 그리고 겨울, 나는 석 달을 범물에 잠긴 암각화의 말을 더듬어 듣고, 읽고, 받아적으며 보냈다.

동류천변 따라 풍경이 발을 씻고 떠나가고,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볼빨간기러기 날개깃에 새겨진 초서를 손매나 귀매 눈매도 아닌 마음으로 읽어내려갈 즈음 내 오른쪽 눈은 실핏줄이 터졌고, 어깻죽지는 내려앉았다.

혈점에 침을 꽂고 치유의 시계바늘을 헤아리는 그러한 동안에도 세월의 강 죽을 힘 다해 건너온 사람들의 마른기침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차마 물결조차 씻어내지 못한 젖은 상처 속 고름이 묻어났고, 돌기는 실팍한 샘 바닥으로 두레박이 내려지고 있었다.

그랬다. 범물노인복지관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 <사진자서전 쓰기, ‘돌아보니 ‘봄’ 이더라’프로젝트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매 회차마다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설계도를 그리는 나를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말과 글을 제법 잘 활용하고 가르치며 살았다고 여기던 그 자부심마저 의문스러워졌다.

인문학은 고통과 대결하는 한 방식이라고 했던가? 프로젝트 참여 대상은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수성구 거주 60세 이상 중,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국가유공자, 독거노인 등’이고, 사업명은 ‘사진자서전쓰기’다. 한 사람의 생은 한 개의 도서관이고 박물관이라는 말이 회자되듯 참여자의 삶을 제대로 읽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상처를 함께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안과 치유의 인문학이라는 자부심으로 자리했다.

수업은 참여자들이 처음 접하는 글쓰기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동기를 부여받고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북돋우고 이끌어주는 매개 역할의 ‘자서전가’를 지었다. 오승근의 노래로 애창되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의 음률에 맞춰 개작하였다. ‘자서전가’는 한 두 번의 합창만으로도 흥을 일깨웠고 각자의 개성을 살린 ‘나의 자서전가’와 인생 소명을 담은 ‘내 이름 삼행시’를 지어 발표하면서 프로그램의 장을 열었다.

참여자와 짝꿍샘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시작해 마음열기, 나를 찾아 가기 위해 구성된 ‘나의 성장기’ ‘그리운 어머니 & 아버지’ ‘결혼과 나의 가족사’, ‘내 삶의 역사적 순간들’을 들려주고, 읽고, 함께 쓰기로 진행되었으며, 문화체험과정으로 찾은 경산동의한방촌에서의 향주머니 만들기, 족욕 체험, 삼성현문화박물관에서의 원효, 설총, 일연보각국사와의 만남은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하고, 참여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마무리를 위해 설계된 ‘다시 꿈꾸는 내 인생’의 작업으로 1차 육필자서전 쓰기 과정을 갈무리했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내면을 표출하고 정리, 승화시키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편집, 사진자서전출판기념회, 육필자서전 전시라는 입체적이고 나눔과 공유, 공감이 있는 과정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서전은 유명인이나 부유층의 노인들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범물노인복지관의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 <사진자서전 쓰기, ‘돌아보니 ‘봄’ 이더라’ 프로젝트는 그 편견을 걷어내고 함께여서 가능한 위안과 치유의 인문학 에너지를 발견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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