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청소년의 학습된 무기력과 자기주도성
[대구논단] 청소년의 학습된 무기력과 자기주도성
  • 승인 2023.12.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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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원 달서구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최근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은 각자의 적성과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게 되거나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등 12년간의 학창시절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약간의 개인차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학창시절의 결과에 만족하며 해방감도 느낄 것이다. 청소년을 둔 가정에서의 부모님의 감회 또한 새로울 것이다. 당사자인 청소년만큼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제 곧 성년이 되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당면한 일상의 선택을 하며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결정을 하는 등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 대다수는 예측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주 일부이기는 하나 대학입학 후에도 수강신청이며 성적관리와 일경험이나 자격증취득까지 부모님이 관리해 준다는 일명 ‘헬리콥터 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며 지면을 장식한다. 또한 어려운 사회상황을 반영하듯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부모님으로선 대학입학 만큼이나 걱정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취업 후에도 직장의 보고서를 부모님이 대신 해주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려온다. 일부러 만들어 낸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에 더 충격적이다. 우리는 대학과 취업이 요즘 청년들의 삶에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는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성인이 된 자녀가 독립적으로 잘 살아갈지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대학이나 취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유,아동시기를 거쳐 청소년시기에 일어나는 이들에 대한 과도한 부모님의 개입은 그들의 선택의 경험과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수용하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제한한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선택이 항상 옳더라도 자녀의 선택은 선택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녀와 함께 충분히 상의했다고 해도 때로는 부모님의 의사를 반영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자신이 어떤일을 해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어떤 선택이나 행동도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이런 학습된 무기력은 청소년의 정체감 유실의 결과를 낳게 되는데 이는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타인의 결정이나 가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보다 심각한 것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정체감 발달에 관한 가장 부정적인 개념인 ‘정체감 혼미’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초기 자신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가치와 진로 그리고 신념을 형성하는데 많은 시행착오와 탐구를 수반하는데 얼마나 확고한 생각을 가지게 되느냐에 따라 자아정체성은 보통 혼돈이나 유예수준에 머물러있기도 하며, 그때마다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학습된 무기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부모의 조력과 청소년 스스로 숙고하고나 사색하는 것이 정체감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반면 자기주도성이란 자신이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모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발달과업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자녀가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청소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지 보호자가 직접 해결하거나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은 방관이 아니다.

이런 주도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것은 한두번의 경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거쳐 경험을 하고 시행착오 또한 거쳐야 하는데 이 때 일관성 있는 양육태도 또한 중요하다. 어쩌다 한번씩 경험하는 자기주도적인 상황으로 자기주도성이 높은 청소년으로 자라길 기대할 수는 없다. 단, 위험한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선택권을 주어선 안 되겠지만 그들의 주체적 선택경험은 좋은 교육과 함께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무의식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고 그 무의식은 나도 모르게 내가 행동에 반영된다. 어쩌면 인간의 완전한 독립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독립된 존재로 성장시키는 것이 양육의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청소년이 성인되어서도 자신의 양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뜻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청소년의 선택이 늘 비이성적, 비합리적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그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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