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섬
[좋은 시를 찾아서] 섬
  • 승인 2023.12.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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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학 시인

안개 자욱한 바다지만

섬과 섬 사이엔 길이 있다

북서풍에 휜

섬의 옆구리

웅크린 지붕 위에 세모를 그리고

네모와 동그라미로 장식한다

맨발로 꽃길만 걸으려다 문득, 사과를 깎는다

사과면 다 같은 줄 알았는데

갈면 더 그런 줄 알았는데

흠 있고 못난 것이

더 큰 소리로 더 많은 즙 흘리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는 것

먼저 입 댄 파도 아닌

밤새 외눈으로 말하는 섬

◇권순학= 대전 출생.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현재 영남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해설> 수많은 시인이, 섬을 시로 썼다. 권순학 시인도 섬을 언어로 가장 자신만의 섬으로 그려놓고 있다. 그의 섬에는 여러 사람이 살지 않는다. 어쩌면 등대 하나만 있거나 시인 혼자만이 섬의 둘레를 칼이 되어 깎고 있다. 그가 쥔 칼은 시퍼런 파도의 빛깔일 수도 있다. 단순하게 둥글기만 한 섬이면 얼마나 밋밋할까. 그가 깎는 섬은 흠이 있고 못난 섬이지만 애액이 주르르 흐르는 그런 섬은 아닐까. 현실은 안개 자욱한 바다이지만, 시인은 섬과 섬 사이로 난 길을 찾아 꿈꾸는 하나의 섬에 흘러들어 세한도 속에 등장하는 한 채 누옥 닮은 그런 섬이 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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