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이미 와 있는 행복
[달구벌아침] 이미 와 있는 행복
  • 승인 2023.12.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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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거라고 믿고 또 믿었지만
역시나 명단에서 이름 못 찾아
며칠 동안 짜증나고 화났지만
일하고 쉬면서 평소처럼 지내
행복은 서서히 오고 있을테니
박순란
주부
한 달정도 기습적인 불안을 잠재우는 시도를 해야하는 시간이었다. 한 계단 뛰어올라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껏 해 왔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번에 한 단계 올라가지 못 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요 물거품이 될 거라는 우울감이 생겼다. 이번에는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

그것이 천국을 오르는 계단은 아니어도 적어도 자존감과 행복을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만 되면 자신에게는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이제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각자 역할에 충실하고 취업과 연애, 결혼이라는 과업을 스스로 달성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행복의 충족조건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제 남은 과업갯수는 줄어들고 그것만 달성되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한 달을 지배했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내 행복에 조금 더 다가간다.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번에 꼭, 빨리 되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 안 될 것 같은 기습적인 불안이 기습적인 ‘그 분’의 전보소식과 함께 생겨났다. ‘그 분’이 없다면 가망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 때부터 한 달 동안 ‘될까’ ‘안 될까’ 계속 뒤집어지는 생각과 그 근거들을 추측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빨리 결과가 나와 이 되풀이해서 번복되는 생각을 끝내고 싶었다. 이것이 달성되어야만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쉽게 끊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했지만 결과가 나와야 끝날 것이었다.

여름에 피어있는 꽃 중에 노란색이 돋보이는 메리골드가 있다. 강한 햇볕과 비에도 잘 죽지 않아 야외화단을 꾸미는데 사용한다. 노란색꽃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꽃말을 검색해 보니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다. 행복이 꼭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주는 꽃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번에 행복이 내게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그렇게 믿어야겠다는 것은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기에 강한 믿음을 가지려는 게 아닐까. 확신이 있다면 마음 편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지 굳이 믿음을 강하게 가져야 겠다는 의지를 다질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희의 촉은 적중했다.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없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행복하고 싶은 기대감만큼이나 불행감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행복감도 크게 느끼고 불행감도 크게 느끼는 정서적인 느낌이 높은 사람의 특징이다. 불행감을 더 크게 느끼지 않도록 단련이 필요한데도 저절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하루, 이틀, 사흘내내 화와 짜증난 이유를 들추어서 스스로를 볶았다.

끝내 그 행복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일 것을 믿으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더 노력하고 애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았지만 특별히 해야할 것은 없었다. 평소처럼 일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쉬면 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 행복은 내게 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해야할 일은 이미 와 있는 행복을 느끼며 문을 열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로 오고 있다.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오늘도 자신을 다독여본다.

이미 와 있는 행복을 놓치지 말자. 와 있지 않는 행복 때문에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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