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턴테이블
[좋은 시를 찾아서] 턴테이블
  • 승인 2024.01.02 21: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미화 시인

백년의 우물이 있었다

민박집 여자는 나와 마주 앉았다

이제 이 방의 주인은 당신이에요

무슨 소리지요, 밤새 물소리를 들어보세요 우물은 내려설 수 없는 물무덤이었다 나를 거기에 앉혔다

그러니까 앞으로 백년을 내려다보아야 했다

나는 나를 자주 비껴 앉았다

끝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이 드물긴 해요, 집 안으로 우물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에요 우물을 밖으로 내다놓지 않은 거지요

민박집 여자는 우물을 바라보는 데 백년이 걸린다고 했다 메우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석미화= 2010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14년『시인수첩』신인상을 받았다. 2019년 ‘아르코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가 있다.

<해설> 석미화 시인은 201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나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나왔으니, 21년 후배인 셈인데 사실은 내가 신춘 예심 심사에서 걸러낸 시인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술도 못 먹는 나를 시상식 뒤풀이 3차 자리에 그의 부군 되는 분이 데리고 가서 멀쩡한 사람 시인 만들어 놨다며, 벌주로 폭탄주 4잔을 연거푸 비우게 했다. 지금 고백하지만, 그날은 엄청 추웠고 난 필름이 끊겨 서너 시간을 동대구로 화단에 앉아 있었다. 의식의 우물은 턴테이블과 다르지 않아서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민박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백년의 우물이 거기 있다는 사실에도 시인은 이제 자신만이 음을 읽어낼 뾰족한 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마지막 행의 행위는 나르시스의 거울을 깨고 몸 안의 싱싱한 알을 꺼내야 하는 어떤 신호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날 내가 얼어 죽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오래 지속되도록 앞으로 더 좋은 시를 기대해 본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