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슬픔으로 고픔을 먹다
[좋은 시를 찾아서] 슬픔으로 고픔을 먹다
  • 승인 2024.01.0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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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표균 시인

작업실 침상에서 홀로 눈 뜨면
나보다 슬리퍼가
먼저
주방으로 갑니다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슬퍼서 먹습니다
입맛 당겨서가 아니라
외로워서 먹습니다
끼니 때우기는
배꼽시계 태엽 감아 주는 것
김 빠진 밥상 끌어 당겨 상다리와 함께
외로움 나누면서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 남의 눈을 피하느라 먹어 주는 것이니
눈칫밥이겠지요
미운털 박혀 눈총 받으며 서운했던 일과
슬퍼하는 것들로 차린
스트레스가 진수성찬입니다
가끔 좋았던 기억이 별미로 차려질 때도 있지만
끝내
숟가락 툭 떨어지는 소리마저 혀로 말아 넘기고 가야 하는
한 가지
슬픔은 먹되 고픔은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눌 길 없는 슬픔을 씹어
울음은 머금고
눈물을 삼키려도
목이 젖지 않는 것은
죽어서도 만나고픈 사랑 때문일까요

△ 신표균= 경북 상주 출생. ▶<<心象>> <<유심>> 신인상 등단.▶(사)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사)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사)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 (비영리법인) 도동시비동산운영회 2.3대 회장.▶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생나눔교실>시창작 멘토▶시집 <<어레미로 본 세상>><<가장 긴 말>><<일곱 번씩 일곱 번의 오늘>> ▶고대문우상, 제2회 대구펜 작가상 수상.

<해설>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슬퍼서 먹습니다/입맛 당겨서가 아니라 /외로워서 먹습니다" 이보다 진정성 있는 고픔의 현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픔과 고픔은 다른 생리현상임에도 이를 같이 바라보는 시인의 절대 감각은 제대로 살아있는 것 아닌가.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과 기뻐서 눈물이 나는 것도 알고 보면 같은 감정일 것인데, 울음은 머금고/눈물을 삼키려도/목이 젖지 않는 것은/죽어서도 만나고픈 사랑 때문일까요" 라고 시의 마지막 부분에 시인이 이입한 감정은 " 때문이다." 보다 "일까요"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판단의 기회를 주면서 자신에 경우를 돌아보게 하는 묘한 뉘앙스를 지닌 놀라운 표현인 것이다. 죽어서도 만나고픈 그런 사랑이 내겐 있는가?

-<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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