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대한민국 필수의료는 건어물 신세
[의료칼럼] 대한민국 필수의료는 건어물 신세
  • 승인 2024.01.0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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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대구시의사회 논설위원 행복한재활의학과 원장
가난했던 장자가 어느날 이웃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더니 그 이웃은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소. 내가 나중에 세금을 거두어 선생에게 3백금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장자는 얼굴빛을 바꾸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오는 길에 누군가 나를 부르기에 돌아봤소. 수레바퀴 자국에 물이 고인 곳에 붕어가 한 마리 있지 뭡니까? 내가 붕어에게 물었소. ‘너는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 붕어가 대답하길 ‘나는 동해의 물결에서 튕겨나온 용왕의 신하인데 한 되의 작은 물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나를 좀 살려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대답했소. ‘알겠다. 내가 지금 남쪽으로 가는데 오나라와 월나라 왕들을 만나서 큰 강의 물줄기를 거꾸로 흐르게 하여 그대를 구하면 되겠는가?’ 하고 말했더니 붕어가 발끈하며 말하기를 ‘나는 늘 함께 있던 물을 잃어버려 몸 둘 곳이 없습니다.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그대가 이처럼 말하니 남쪽 나라에 갔다 올 때는 차라리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 외물(外物)편에 나오는 학철부어(후轍부魚:수레바퀴 자국에 있는 붕어)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다. 당장 배가 고픈 장자에게 한 되의 곡식만이라도 도움이 될텐데 나중에 큰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웃의 허무맹랑하고 기만적인 태도를 붕어 이야기를 끌어와서 위트있게 꾸짖고 있다.

이런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가 수레바퀴 자국에 난 조그만 웅덩이 같은 현실에서 숨을 헐떡이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장이나 대동맥 등 응급을 다투는 중요 수술을 하는 교수들은 점점 더 줄어들어 대한민국 산업군 중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아서 밀려드는 수술에 집중하기도 바쁜 노교수님들이 당직 업무도 함께 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의가 아닌 것이 분명한 사건들에도 의사의 민사적 책임 뿐 아니라 형사적 책임까지 지우고 의사면허를 박탈하는 결정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장 상황을 바라보는 젊은 의사들이 과연 필수의료를 사명감만으로 지원하려고 할까?

축구 국가대표에게 정신력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것이나 의사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조하는 것은 똑같이 시스템의 끝자락이라는 의미이다. 이대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고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주장하고 90% 가까운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가 가져올 영향을 두 가지만 살펴 보자.

첫째, 의대정원을 이천명을 늘리면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수요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지금의 상황으로도 실력있는 의대교수를 붙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얼만큼의 재정을 더 투입하여 교수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진료환경을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인지 정부는 장기적인 예산을 확보는 해 놓고 하는 것인가? 신문을 아무리 봐도 감정적인 말 뿐이지, 제대로 된 예산편성과 추산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둘째, 의대정원을 늘리면 늘어난 의사는 겨우 연명하는 대한민국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바로 내년부터 의대정원을 늘인다 해도 전문의가 될 때 까지 11년, 제대로 된 수술 집도의가 되는데 까지는 13년 이상이 걸린다. 남자의 경우 군대를 갔다 오면 16년 이상 걸린다. 그것도 제대로 된 교수들의 지도를 받았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지금처럼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교수들이 전공의도 받지 못한 채 더 이상 대학에 남아있기 어려운 환경에서 늘어난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제대로 교육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필수의료에 대한 처우개선과 고의성이 없는 과실에 대한 재앙에 가까운 징벌체계를 완화한다면 제 자리를 떠났던 의사들은 연어가 모천을 찾듯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안전하며 빠른 길이다. 그런데 이런 쉬운 길을 두고 정부는 13년 내지 16년이 걸리는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이고,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부추기며, 국민들은 진실을 제대로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 번 양보해서 새로운 의대생들이 사명감에 불타서 필수의료를 지원한다고 치자. 과연 십 몇 년 후에 대한민국의 필수의료가 숨을 쉬고 있을까? 그 때가 되면 대한민국 필수의료는 차라리 숨이 끊어져 말라빠진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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