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군불
[달구벌아침] 군불
  • 승인 2024.01.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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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겨울 시골은 춥다. 도시의 화려한 전등불이 열기를 뿜어내는 것같이 환해 덜 추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시골의 겨울은 텅빈 논과 밭만큼이나 휑하고 바람이 분다. 그래서 시골의 집밖은 춥다. 할 일 없는 시골과 시골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피하기 위해 방에 모여든다.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추위를 감당하기 보다는 함께 모여 방안을 체온으로 덥히고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한 집에 모인다. 요즘 시골 경로당에 어른들이 모여 같이 밥먹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방안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있다. 빈 들판이 휑하지만, 한편으론 집안 구석구석에 그 결실을 거두어들였다는 표시여서 수확의 땀방울처럼 느껴진다. 밖이 비어 있어야 안이 가득차는 것이 농사꾼의 살림이다. 집안 창고방에는 벼와 과 말린 고추와 익은 감이 있다. 또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와 무도 비닐포대기에 담겨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방에는 고구마가 박스째로 쌓여있다. 한 겨울 군것질거리다.

아랫목이 따끈따끈한 방에 대여섯명의 어른들이 촘촘히 동그랗게 앉아 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녹히기 위해 군불을 때야한다. 온돌방은 새벽이 되면 구들이 식어서 차가워지기 때문에 밤 늦게 장작을 피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 밤에 따뜻하게 잠을 잘 잘 수 있다.

군불을 지피기 위해서 아버지와 엄마는 겨울이 되면 나무하는 것이 일이다. 추수하고 남은 볏짚을 마당 한 귀퉁이에 쌓아 두고, 익은 콩을 털고 난 나무같은 콩줄기도 그 옆에 쌓아둔다. 쌀을 찧고 난 벼껍데기도 무덤처럼 모아둔다. 이 정도로 한 겨울을 나기에 충분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6시쯤에 소죽을 끓이는 용도로는 충분하다. 20분 정도 불을 때면 소죽 가마솥에서 눈물이 난다. 김이 나서 본체와 뚜껑 사이 틈으로 나오는 김을 눈물이라고 했다. 그러면 불때기는 끝이다. 뚜껑을 열고 휘휘 저어주고 3분 정도 더 끓이고 뜸이 들도록 놔두면 되었다. 소죽을 끓일 정도의 불때기를 마쳤을 때는 방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정도이다. 차갑게 식은 돌이 온기를 머금기 시작할 때이다. 일단 소죽을 더 끓이지는 않고 소여물통으로 날라서 소가 먹도록 한 다음에 차가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밤새도록 따뜻해지도록 군불을 땐다. 오래도록 잘 타라고 주로 장작을 땐다.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는 장작을 하러 산으로 갔다. 그렇게 쌓인 장작이 뒤안 담장따라 쭉 쌓였다. 겨울의 바람을 막아주는 장작더미다.

군불을 때면 아랫목이 뜨끈뜨끈 해진다. 요즘 찜질방이나 불가마처럼 말이다. 너무 불을 많이 때면 장판이 녹아 쭈글쭈글해지기도 하고 시커매지기도 한다. 그건 얼마나 군불을 많이 땠는지를 말해 주는 증거다. 엄마와 아버지는 밤에 자다가 추울까봐 최대한 불을 많이 땠다. 그래도 구들은 새벽이 되면 스스로 식어서 바닥이 차가워진다. 그래서 시골 요는 두껍다. 그래야 바닥의 한기를 덜 느끼기 때문이다. 두꺼운 솜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꽁꽁 싸맨다. 이미 그 때쯤에는 엄마는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갔고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다시 따뜻해질 것이다. 꿈을 꾸다가 깨서 아쉬워하며 다시 꿈을 꾸고 싶고, 아직 덜 깬 잠을 더 자려고 눈을 감는다. 바닥이 다시 따뜻해질 때면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요 밑으로 손을 넣어 바닥이 따뜻해졌는지 본다. 방바닥이 다시 따뜻해지자 다시 잠속으로 골아떨어진다. 꾸다만 꿈은 다시 꿔지지 않는다.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다가 추운 겨울 집을 가면 하루종일 군불 땐 방에 누워잔다. 지친 몸이 풀리고 다 빠져버린 정신적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찜질방에서 느끼는 뜨거움과는 다르다. 아버지와 엄마가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 주지 않아도 마치 아버지와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추운 겨울 바람이 불면 늘 아버지, 엄마가 군불을 땐 그 방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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