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섬 -작도
[좋은 시를 찾아서] 섬 -작도
  • 승인 2024.01.07 21: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서영


자로 잰 듯 딱 한걸음
언제나 그 자리 그만큼의 지점에서
홀로 푸른 미소를 그리며 원으로 떠 있는 그대
내가 관심의 선분을 그으면 돌아서고 지우면 부르는 얄미운 그대

만질 수도 쥘 수도 없어 날마다 출렁이는 나
잎새 하나 파도에 슬쩍 밀어
그대 앞에 내접 점을 찍는 주파를 보내도
그대는 바다 가운데 가만히 떠 있네요
우리 마음을 합한 내각은 180도일까요 360도일까요

깃털이 새를 흔들고 나비의 날개가 태풍을 몰고 오죠
그대에게 놓는 무지개다리 수선을 긋는 일
우리 수평으로 나란히 선분만 긋지 말고 문제를 풀 시간
당신의 마음 원에 내접하는 나와 사랑의 삼각형을 작도해 봐요

그대의 모습으로 팽팽한 바닷가 한쪽
우듬지가 늘어나고 열매를 매달고 선 해일 앞
근력이 한없이 작아졌다 커지는 나
그대의 중심에 옮겨져 사랑의 부피를 재고 있어요

컴퍼스 안,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바라만 보는 그대
빙긋 긴 꼬리만 흔들고 있는 초록빛 혜성
가까이, 먼 그대는


◇명서영= 심상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청소년시 문학상 수상. 5.18문학상 수상. 아르코문학 창작지원금 발표지원 수혜.



<해설> 섬을 노래한 시인가? 사랑을 노래한 시인가? 왜 섬은, 언제나 그 자리 그만큼의 지점에서 홀로 푸른 미소를 그리며 원으로 둥둥 떠 있는 그대인가. 내가 관심의 선분을 그으면 돌아서고 지우면 부르는 얄미운 그대인가의 답은, 섬이 섬 아닌 그대이기 때문 아닐까. 이 시에서의 사랑은 시인의 일방적인 사랑에 가깝다. 결국 나는 다가가지만 섬인 그대는 와락 안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시인은 고독하고 심지어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앞에 두고, 삼각자를 들고 끝없는 작도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아프지만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이 시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녹이게 한다. 시인이 너무 믿는 것은 깃털이 새를 흔들고 나비의 날개가 태풍을 몰고 온다는 것. 그건 가설일 뿐 당겨도 섬이 오지 않으면 다이너마이트를 배에 가득 싣고 섬을 향해 돌진해보는 건 어떨지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