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갯벌, 걷다
[좋은 시를 찾아서] 갯벌, 걷다
  • 승인 2024.01.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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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채 시인

초승달이 갯벌에 내려와 노는 날은

내 몸엔 번개가 일고

맨발 자국마다 달이 들어와 앉는다

초승달이 화엄경을 펼쳐든 날은

발을 벗고 맨발로 걸자

새조개엔 반달이 스며들고

항하를 따라 흐르는 속 물살은 환희에 달뜬다

반월의 부드러운 갯벌에

발자국을 찍어 주자

발의 감촉을 느긋하게 즐기며,

조갯살의 물컹한 몸을 끌어안는다

물바람이 뒹구는 달이 들어가 있는 물과

겨드랑이에 돋은 날개가 춤을 추면

꽃바람과 목화구름이

우리 모두에게 온다

바다가 열리고

모래톱이 숨을 내쉬며

갯벌이 깨어나는 소리에

눈뜬 달의 발자국이

먼동 아스라한 초승달같이 굽어진 인생길을 질러

달빛 끌어 말아쥔 산들바람이

내게로 온다

◇이한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AEP. 강남포엠문학회 회원. 월간모던포엠 시부문 신인상등단. 시인촌동인, 시집 ‘연못 속 하늘’이 있음.

<해설> 어찌하여 시인은 맨발로 갯벌을 걷는 것인가? 초승달 때문이라고 답을 하려다가 문득 돌아다 보니, 갯벌 거기엔 무수한 생명의 첫 시작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과 흙의 만남은 이렇듯 질퍽해서 껍질 밖으로 나온 새조개의 밤 외출은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맨발에 닿은 감촉이 적나라하게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으면서 갯벌의 객관적 묘사에 주관을 섞어가는 시인의 내공은 깊다. 내가 초승달에게로 다가갈 때 달 또한 내게로 걸어오고 있다는 직관 끝에 의인화된 바람이 있음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다. “달빛 끌어 말아쥔 산들바람” 또한 여인의 쓸리는 소복 아랫단을 살포시 들어 올린 그런 동작이어서 결국 시인의 갯벌은 사랑을 향한 그리움에 다름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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