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CNK, 최기창 부표들展
갤러리 CNK, 최기창 부표들展
  • 황인옥
  • 승인 2024.01.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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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부수고 새롭게 치환…자유의 문을 열다
사랑 노래 선별 전시장에 부착
본질적인 의미 인식하게 유도
120개 조각으로 나눈 ‘피에타’
서양 중심 미술사에 질문 던져
익숙한 주제를 다르게 구현
무뎌진 감각에 돌 던지는 셈
“멀리선 구상, 가까이선 추상
인간 세계에 대한 은유 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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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창 작.

최기창 작가
최기창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CNK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예술가라면 고착화된 이론이나 시스템에 균열을 내려는 투지를 불태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의 통념을 깨부수려는 태도는 예술가가 타고난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깰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예술가의 선택이다. 무뎌진 의식에 강한 어조로 균열을 주겠다는 의지의 발로 아래 강렬한 한 방을 터트리고 싶어 하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 이른 새벽 이슬비 같은 자잘한 존재감으로 촉촉하게 스며들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세상의 유불리나 평가에 눈치를 보기 마련이지만, 성향에 따라 타고난 자질을 따라가는 이들도 없지 않다. 주로 후자들이 이런 경우다.

갤러리 CNK에서 개인전이 한창인 최기창 작가의 작품에서 소재나 형식식인 강렬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입버릇처럼 읊조리며 새털처럼 가볍게 소비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나 너무나 익숙해 무감각할 정도가 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작업의 소재로 택한 것에서 애초에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겠다는 의지는 표명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성취를 오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선뜻 보기에 위력적이진 않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에 환호하고, 오마주는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 익숙한 것은 소재다. 사랑이라는 단어나 피에타 조각상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너무 익숙하다는 것은 맹점을 안고 있다. 감각적으로 무뎌져 있다는 것. 이럴 경우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익숙함이 가벼움으로 전락하고, 이 때 애초에 환호했던 인류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의 무게감은 사라진다. 그 무게를 되살리는 것 또한 강렬한 혁신일 수 있다. 의미로 가득했던 기존의 기준이나 시스템에서 무관심이나 왜곡을 걷어내고 애초에 가졌던 본질적인 의미를 바로세우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혁명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기창의 의식은 익숙한 대상들에 꽂혀 있다. 소재, 물성, 매체 모두 익숙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나, 시대를 초월해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나, 미국의 애니메이션 ‘루돌프 사슴코’ 같은 친숙하고 익숙한 소재를 사진, 철판, 시트 등의 일반적인 물성으로 구현한다. 매체 또한 평면, 설치, 영상 등 일반화된 방식들을 활용한다.

가벼움에서 시작해 가벼움으로 끝나는 것에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가벼움이 의미를 획득 하려면 무거움이 쌍둥이처럼 함께 해야 한다. 반전의 복선만큼 강렬한 흡입력도 없기 때문이다. 최기창의 독자성은 가벼운 대상을 무거운 성찰로 태세 전환을 이끄는 데 있다. 그는 가벼움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는 익숙한 대상, 즉 프로파간다와 흡사한 이데올로기적 강요나 사랑 같은 싸구려 감성들을 본래 가졌던 무거웠던 의미로 치환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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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창 작. 갤러리 CNK 제공

CNK 전시작 ‘더, 한 번 더, 그걸 로는 충분치 않아’에선 국가와 군가, 유행가, 찬송가 등 약 1천500곡에서 사랑과 관련된 문구들을 선별해 시트지로 전시장 유리창의 외부 표면에 붙였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작의 재소환인데, 세대와 시대를 넘나들어 소비되는 애증과 연민, 맹세, 다짐 등 평면적이고 가벼운 사랑의 단어들을 집적하는 방식으로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새롭게 인식한다.

초기작인 ‘반달(2009)’도 이번 전시에 확인할 수 있다. 정면에서 볼 때 완벽한 보름달이지만 다양한 지점에서 보면 온전하지 못한 뒤쪽이 잘린 반구의 형태임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반달이라는 개념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한 현상일 뿐 달 자체는 온전한 구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지구가 만들어 내는 그림자에 따라 다르게 보였을 뿐”이라고 언급하며 “사물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피에타’는 미술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표라고 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재현이다. 미술사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판, 그러니까 너무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사진을 녹이 슨 철판에 120개 조각으로 분절했다. 더구나 철판을 부식 상태로 변화를 이끌었다. 높이가 2m가 넘고 120개 조각으로 분절한 후 부식까지 된 상태여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까지 감지된다. “조각상 ‘피에타’를 둘러싼 우리의 선입견과 서양 중심 미술사라는 체제 전체를 돌아보게 했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그는 사물이나 주변 환경과의 조우로 발생하는 우연성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는 작업의 전 과정을 작가 자신이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내려놓았다는 의미다. 그는 우연성을 오히려 ‘운’으로까지 생각하며 수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석을 철판에 던져서 두 물질이 만들어내는 구성을 받아들인 작품 ‘드로우 드로잉’과 얼룩이나 흔적 같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수용한 작품 ‘순환하는 밤’, 쌓이는 먼지를 이물질로 취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표현의 하나로 인식한 작품 ‘슈퍼스타더스트’ 등에서 화면을 엄격하게 조정하고 통제하기보다 협업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우연성의 수용에서 단지 유물론이나 행위자, 객체지향 같은 말로 포착할 수 없는, 특유의 예술적 방법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유명한 조각상이나 이미 발표된 애니메이션을 오마주로 작업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오마주하는 대상의 힘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오마주를 자신의 예술적인 방법론 중 하나로 인식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누군가의 미술 위에 내가 새로운 행위를 시도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미술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오마주의 대상과 오마주로 새롭게 거듭난 자신의 작품은 출발점이 다르고, 그 이면에 녹아있는 주제 또한 다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자유를 향한 욕망만큼 강렬한 것도 없다. 특히 외부적인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열망은 예술가들의 숙명이다. 그들은 고착화된 통념을 뛰어 넘으며 자유를 누린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배반의 행위다. 시류를 거스를 때 추앙받을 수 있다. 최기창은 연속적인 삶에서 견고하게 정의 내려진 개념이나 대상들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새롭게 포착하고 재구성하는데 흥미를 느낀다.

특히 확고하게 굳어진 대상을 새롭게 치환하는데 열정을 할애해 왔다. 규모나 물성, 표현방식의 변화를 통해 구상을 추상과의 양립으로의 변화를 이끄는데 여기에는 사물을 인식하는 그의 철학이 녹아있다. “멀리서 보면 구상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추상인 작품들은 인간 세계에 대한 은유입니다. 사람도 멀리서 보는 모습과 가까이 다가가서 본 모습이 다릅니다. 평소 알던 사람이 아니죠. 그런 이야기를 구상과 추상이 양립하는 모호성으로 치환했습니다.”

최기창의 ‘부표들’전은 2월 2일까지 갤러리 CNK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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