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새해,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달구벌 아침] 새해,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 승인 2024.01.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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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첫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둘째가 3학년이 되던 해 3월 2일 입사를 했다. 경력 단절이 된지 20년이 지난 해였다. 이른 나이에 입사를 하고 5년간 근무후 퇴사를 하고 재취업이 되기 까지 꽤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무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엿한 사회인으로 취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퇴사할 때는 분명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지만 대학교를 서른 즈음에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더 젊고 스펙이 있는 청년들이 그 때도 있었다.

대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다보면 졸업할 때즘에는 능력이 생겨서 전문성을 갖추고 원하는 곳에 좀더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대학교 수업이 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때가 아니어서 정보과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취업이 잘 되는 학과도 아니어서 결국 제대로 된 직업을 선택하지도 못했고, 취업을 하지도 못하고 결혼과 육아로 30대와 40대 중반까지 보냈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하니 감격스러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더 늦지 않게 일하게 된 것도 감사했다.

그 때 같이 입사한 분 중에 5년 연상인 분도 계셨다. 그 분도 경력이 단절된 분이셨다. 다른 일을 알바처럼 잠깐씩 하고는 계셨다. 그 일을 하기까지는 노력도 많이했고, 능력도 갖추어야하는 일이었지만, 주40시간 일을 하기 위해 시험을 쳤다고 했다. 자신이 이런 일을 안 해봤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꾸준히 성실히 일을 했다. 그 분이 일하는 속도가 가끔은 느리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분에 비하면 홍희는 젊고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했던일이 도움도 되어 이해력과 처리도 빨랐다. 우왕좌왕, 불안은 덜 했던 것 같다.

그 분은 당시에 10년후면 만60세로 정년이 될 나이였다. 홍희에겐 더 나중이 되겠기에 정년을 생각지도 않았다. 그 때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과연 그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일을 해낼수 있을까.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이가 많다고 기피하지 않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7년 정도 뵙지 못했다. 다른 장소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다시 그 분을 뵈었을 때는 그 사이에 업무처리속도와 능력이 좋아지신 것이 보였다. 일에 능숙해진만큼 나이가 들었고,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년을 1년 남겨두고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정년을 맞이하는 그 분은 담담해 보였다. 속이 후련하실까. 그 분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분은 보는 홍희의 마음이 착잡했다. 홍희는 자신이 정년이 되어 직장을 떠나는 상상을 하면 꽤 슬플 것 같았다.

정년도 비자발적이다. 일을 하고 싶고, 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일을 그만하라고 정해주는 회사의 규칙에 의해 ‘짤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빨리 정년이 되어 그만두고 싶다고 하고, 누군가는 정년을 맞이하는 그 분에게 부럽다고 했지만 그 분의 표정이 홀가분해 보이지만은 않은 것 홍희의 마음이 안경이 되어, 그 안경으로 그 분을 보았기 때문일까.

기다리지 않아도 정년은 왔다. 마지막 출근일이 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 분은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 할 수 없었다. 비자발적 퇴사였다.

곧 홍희에게도 정년이 올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새해는 왔다. 아마 기다리지 않아도 죽음이 찾아오겠지.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은 성큼성큼 앞으로 오고 있다.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오로지 오늘 하루를, 이 시간을 최대한 길게 써야할 것 같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오늘하루가, 시간이 좀 천천히 가지 않을까. 정년이, 죽음이 더 천천히, 느리게 다가오지 않을까.

2024년 최대한 길게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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