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대학 무전공 입학 확대에 대한 우려
[목요칼럼] 대학 무전공 입학 확대에 대한 우려
  • 승인 2024.01.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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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교육부가 올해 고교 3학년에 적용되는 202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대학들은 구체적인 선발 규모 등 세부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즉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지시한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에 대학 정원의 일부를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방안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학혁신지원 사업의 핵심은 대학별 자율적인 계획 수립인데, 예산과 제도를 연계하면서 사실상 대학에 무전공 입학 도입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 ‘융합형 인재 육성’과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 보장’을 명분으로,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학생을 뽑는 ‘유형 1’과 계열 및 단과대 별로 학생을 선발하는 ‘유형 2’로 나누고, 두 가지 유형을 합쳐 2025학년도에는 전체 정원의 20%, 이듬해에는 25%를 뽑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목표를 실현한 대학에 대학혁신지원사업비 4,426억 원을 적게는 76억 원에서 많게는 155억 원을 지원 한다고 밝힘에 따라, 재정난에 허덕이는 모든 대학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들의 경우 이를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들의 속내는 매우 복잡하다. 즉 반대하는 학과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교수·학생 등 구성원들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것이 많은 입시생들이 본인 적성과 무관하게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는 현실에서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전공 없이 입학하여 1년간 일종의 숙려기간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학과 칸막이를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전공을 정해야만 하는 시기에 모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원하는 전공, 소위 취업이 잘되고 미래 고소득이 보장되는 인기 있는 학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를 경우 결국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해 재수를 하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과거 학부제 도입 당시 이미 비슷한 부작용을 경험한 바가 있다.

무전공 선발은 2009학년도 입시에서 자유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했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선발 인원수를 줄이거나 모집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 비록 자유전공으로 입학하였지만, 전공 선택 시 해당 전공의 교수와 실험실 등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학생들이 원하는 데로 모두 받아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성적순으로 전공 선택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실패한 학생들은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재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또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원하는 데로 모두 받아줄 경우에는 취업이 잘되는 인기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 이로 인해 ‘문사철’ 등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 취업이 어려운 학과는 폐과 위기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무전공 입학 도입을 서두르는 교육부 정책에 대한 우려이다.

결국 무전공 입학생들은 그들이 원하는 전공에 모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 한 또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이 교육부가 제시하는 재정지원 미끼를 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시행은 또 다시 실패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전공 제도가 대학 내에서 정착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교육 인프라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 교육부가 인센티브를 내세워 대학을 줄 세우려 한다거나, 등을 떠미는 형식으로 무전공 입학을 추진해선 안 된다. 대학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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