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기척이 올 때
[달구벌아침] 기척이 올 때
  • 승인 2024.01.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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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이따금 무언가 나를 툭 치거나 슬쩍 쓰다듬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실제로 그것이 머리나 등에 떨어지는 나뭇잎일 수도 있고 창을 통해 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이기도 하다. 우산 없이 흠뻑 맞은 소나기일 수도 있고 새들의 지저귐일 수도 있다. 또 우두커니 멍하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일 수도 있고 책을 읽다 훅, 가슴을 치고 들어온 한 문장일 수도 있다.

그들은 왜 하필이면 이 순간 내게로 왔을까. 혹여 멀리서 나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누군가 건네는 안부나 인사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나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우연’ 아닌 ‘인연’이라 여겨보면 내 편 하나 생긴 것만 같아 위로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사건의 중간에 29번의 징후가 있고, 그 29번의 징후가 있기 전에 300여 건의 작은 불합리함이 존재한다,”는 1:29:300이라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유난히 떠오르는 일월의 끝이다.

눈이 내릴 때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본 기억이 있다. 옆에 있던 차가 출발했는데 내가 타고 있는 차가 갑자기 후진한 듯 생생하게 느껴질 때처럼 분명 땅으로 내리는데 계속 보다 보면 이것이 땅으로 내리는 건지 옆으로 휘날리는 건지 아니면 계단을 오르듯 한 칸 한 칸씩 하늘로 올라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기억들처럼, 눈이 눈에 맺혀 눈물로 내리는지 그 눈물이 눈발이 되어 오르는 건지 알 수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다보면 이런 착시현상이 생길까?

한 인지심리학자는 행복에 대해 ‘행복은 나쁜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 좋은 게 있는 상태’라고 정의를 내렸다. 나쁜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것에 계속 집착하게 되지만 좋은 것이 있으면 그만이라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나쁘고 싫은 이유는 천만 가지도 더 되지만 좋은 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내가 좇는 것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희망이 필요할 때마다 늘 손길 닿는 곳에 두고 펼쳐보는 책이 있다. 류시화 시인의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그중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본부 벽에 붙어 있다는 테레사 수녀의 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올 한 해, 내가 내게 주는 ‘다짐’처럼 필사 해 본다.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당신이 하는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작은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당신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라.//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라.”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며 빈민들의 어머니였던 마더 테레사가 인도 캘커타에 열었던 사랑의 집에 남겨진 글의 전문이다. 삶을 잘 사려고만 애쓰기보다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그저 귀와 마음을 열고 들으면 왠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삶의 기척이다. 눈으로 들어와 희망을 움트게 하는.

아프지 않은 것처럼 참고 슬프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거짓된 모습들을 버리고 그냥 자신의 감정들을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곁에서 나도 하늘을 맘껏 유영하는 눈발처럼 발길 닿는 데로 흘러가고 싶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치켜들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곧 입춘이라는 상기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어둔 밤, 감나무 가지 끝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 눈이나 비가 올 징후다. 봄꽃들, 꽃눈 뜨는 소리 밤새 속삭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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