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음주진료 반대하지만 불가피한 의료상황 고려해야
[의료칼럼] 음주진료 반대하지만 불가피한 의료상황 고려해야
  • 승인 2024.01.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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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록 안심가톨릭 연합의원장, 대구시 의사회 편집위원
대학병원 신경외과에 근무하고 있는 A 교수는 어느 날 아주 난처한 전화를 받았다. 내일 오전에 수술 예정이라 수술 전 처치 및 확인까지 한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지금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란 보고였다. 분명 퇴근하기 전 회진 때까지 별문제가 없어 보호자에게 밝게 인사까지 하고 나온 차였다. 평소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하면 되겠지만, 모처럼 가족 모임을 겸한 저녁 식사에서 반주를 조금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정된 법률은 음주를 한 의사의 진료나 수술을 엄격히 금하고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자격 정지 등 처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간신히 같은 과의 B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여 무사히 응급수술을 마치긴 하였으나, 이러한 일이 언제든 또다시 생길 수 있어 A교수는 간담이 서늘해 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의 한 중소 도시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C 과장은 최근 술을 끊을지 아니면 산부인과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중에 있다. 2020년 10월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음주 상태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했다가 환자 보호자에게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산부인과 의사는 공휴일이라 출근하지 않았지만 당직 의사로부터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복귀했다가 산모의 가족으로부터 술냄새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끼고 나름 필수 의료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던 그는 이제는 1년 365일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 의사이기 때문이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응급 분만을 위해 그에게 이제 퇴근길 한잔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만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의사의 ‘취중 진료’를 금지하는 규정 신설 및 처벌 강화 검토에 착수했다. 의사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환자를 진료, 수술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현행법상 음주 상태에서의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의료행위는 평일 낮 시간에 이루어지므로 아침부터 술에 취해 진료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야간에 응급진료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이라 할지라도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처치를 하는 곳이지 모든 응급치료가 응급실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몇몇 특수한 처치와 생체징후를 다루는 필수의료진의 경우 대학병원이라 해도 분야별로 1~2명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각 과마다 당직 의료진이 있지만 그 의료진이 모든 치료를 담당할 수도 없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당직이 아닌 의료진이 급하게 나와 진료나 수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처벌 규정이 강화된다면 필수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많은 의료진들은 응급환자들을 회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많은 환자들은 다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응급실 뺑뺑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의료법 66조를 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의사가 술을 마시고 진료를 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음주운전과는 그 성격이 다소 차이가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술에 취해 진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되지만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마저 외면하고 처벌만을 강화하게 된다면 필수 응급의료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진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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