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피제(相避制)와 경찰
[기고] 상피제(相避制)와 경찰
  • 승인 2024.01.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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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균 대구시자치경찰위원회 상임위원
고려와 조선에는 상피제(相避制)라는 제도가 있었다. 상피제라는 용어는 근친상간을 규제하는 상피(相避)에서 유래된 말이다. 상피제는 친인척처럼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는 같은 관청이나 같은 지역에서 함께 근무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친밀한 관계로 인한 비리와 부정부패 카르텔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조선의 퇴계 이황 선생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친형인 이해가 충청감사로 임명되었다. 충청감사는 단양군수의 직속 상관이다. 이황 선생은 상피제에 따라 영남의 풍기군수로 보직을 옮기게 된다. 이황 선생이 상피제 때문에 풍기군수로 옮긴 것은 만약에 있을 수도 있는 부조리와 비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 공정과 정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승진이나 전보 등 인사행정에 있어 공정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지역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이 개입하거나 개입할 소지가 있어 공정성이 의심되면 설사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하더라도 신뢰를 받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상피제는 나름 유용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찰청이 시·도 경찰청에서 승진한 경무관은 소속 경찰청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경찰관 ‘상피제’를 올해부터 적용한다. 최근 총경과 경무관 등 고위직 경찰관이 늘어난 만큼 지역 유착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사혁신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 총경급 직위를 경무관이 맡을 수 있는 ‘복수직급제’ 도입으로 경무관과 총경 등 고위급 인력이 증가하면서 조직의 역동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경무관과 총경 전보 인사는 승진한 시·도 경찰청에서 연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근무한 지역에서 익숙함에 따른 타성과 지역 토착인사들과의 유착관계 등 문제점이 일부 있었다. 경찰청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경무관의 경우 승진 당시 소속 시·도 경찰청에서 근무하던 관행을 없애고, 승진한 시·도 경찰청 인사권역 이외의 시·도 경찰청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3년간 승진한 시·도 경찰청에서는 근무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대구경찰청에서 승진한 A 경무관은 동일 권역 내인 경북청이나 대구청 등에서 근무할 수 없는 것이다.

보통 경찰관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대다수는 그들이 성장하고, 오랫동안 근무한 지역에서 경찰서장이나 기관장 등으로 근무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나름 그들이 성장한 지역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상피제는 그런 점에서 공직자들에게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 상피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공직자들의 이런 희망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새로운 경찰 인사개혁안의 성공적인 안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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