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덕 기운 장삼 갈아입고
찾아든 남지장사
수염 성성하다
여물지 않던 생각들을 걸어두던
나뭇가지에서
누런 기침 덩어리를
밤마다 아무도 몰래 이리저리
누가 굴리는 것이냐!
너까지 서러울 건 뭐 있느냐며
따라 읊는
화엄경 한 줄에서
살 껍질 훌훌 벗는
모과나무는
어미 몸에서 떨어질 때
남긴 배꼽 자리
이제야 꾸덕꾸덕 아물고
◇권보옥= 대구출생 ▶ 2023년 상춘곡제 시부문 입상 ▶형상시학, 대구문인협회 회원.
<해설> 가을에 주렁주렁 매달았던 모과가 떨어지고 없는 모과나무를 시인은 대구의 남쪽에 있는 사찰 남자장사에 가서 친견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을 탁발승이라도 된 양 찾아든 고찰에서 살 껍질 훌훌 벗고 있는 모과나무를 통해 자신의 업을 비춰보고 있다. ”누런 기침 덩어리“, ”화엄경 한 줄“이 주는 의미는 결국 탯줄로 연결되면서 배꼽 자리를 살피고 있다. 태어나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든 고통스러운 인간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모과나무는 겨울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꽃을 피우고 여름을 견뎌서 향 깊은 모과를 주렁주렁 매달 것이다. 감기가 유행인 요즘 남지장사에서 수확한 모과차를 마시면 왠지 끓던 가래가 말끔히 삭을 것도 같은 그런 어떤 상쾌함이 지장보살의 미소까지 느껴지는 그런 시로 환치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