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이재명 대표가 달나라로 보낸 응급의료전달체계
[의료칼럼] 이재명 대표가 달나라로 보낸 응급의료전달체계
  • 승인 2024.02.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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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수성아동병원 원장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이하 이 대표) 흉기 피습 사건 후 ‘응급의료전달체계’가 재조명 되고 있다. 피습 후 이 대표의 대처 과정을 보면서 더불어민주당 주도하에 보건복지위를 통과시킨 의료 법안들(지역 의사제나 지방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법안)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 최고수준의 응급외상센터가 있는 부산대병원서 수술준비까지 마친 상황에서 진료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치료 받았다. 게다가 초응급 상황이 아님에도 119헬기로 이동해 특혜 의혹과 함께 그 시간에 헬기 이송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발생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기에 이 대표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의료정책은 물론 의학적 판단이 중요한 의료현장에서도 의료진 의견보다는 환자 진료선택권이 우선된다는 점이다.

물론 환자가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환자 선택권(병원선택)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반 진료는 물론이고 촌각을 다투는 응급 진료마저 환자가 원하면 어디든 큰 제약 없이 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다수의 경증 환자가 종합병원 응급실을 차지해 정작 치료가 필요한 중증응급환자가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은 한 도시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처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방 환자들 상당수가 지역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데도, 유명하니 실력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서울 소재의 병원에 몰려가고 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가게 된다. 서울로 환자가 몰리면 가까운 미래에는 서울의 대형병원만 남게 되어 지방에서 응급환자가 생길 경우 치료가능한 병원이 없어 환자를 서울로 이송해야 하고, 치료시간 지연으로 살릴 수 있는 응급환자의 상당수는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운 좋게 이송이 되더라도 이미 환자 포화상태가 된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기다리다 운명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서울에서 발생한 응급환자가 지방에서 온 환자들로 인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의사가 발급한 전원의뢰서가 있어야만 종합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칙을 정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의료정책을 펴고 있다(만약 의학적 판단 없이 임의로 진료 시 본인 부담금을 비싸게 지불함). 현재 우리도 이런 의료전달체계가 있지만 이 대표 사건처럼 의학적 판단보다는 환자의 주관적 판단이 더 우선되어 현재의 응급의료전달체계는 무용지물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환자는 양질의 진료를 받는 것을, 의사는 좋은 환경에 근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이 대표와 가족이 지방 병원보다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피습 후 취한 이 대표의 행동은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며 만든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부족하다며 만든 지방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법을 만들어 보건복지위 통과를 주도한 당 대표로서 부적절했고 두 법의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소아 등 응급환자 이송 시 응급의료기관들이 천재지변이 없는 이상 이송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담긴 ‘응급실 수용곤란고지 관리 표준지침안’을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수술, 입원 등 최종치료가 가능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를 포함한 의료계는 우려와 함께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응급실 과밀화와 응급환자 치료에 필요한 필수의료 영역 의사 부족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해결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우선인데, 이를 외면한 채 무조건 응급의료기관에 환자 책임을 묻는 정책을 강행한다 하니 그 성공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국민으로서 정치인에 실망한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올바르고 합리적인 의료제도가 정착되도록 장기적 안목을 갖고 만들어져야 할 의료법과 정책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가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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