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 개인전 “부정적 기억 꺼내 곱씹는 과정이 제 작업”, 예술상회 토마
기조 개인전 “부정적 기억 꺼내 곱씹는 과정이 제 작업”, 예술상회 토마
  • 황인옥
  • 승인 2024.02.06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붉은 색·푸른 색 토끼는 자화상
민감한 성격을 ‘창작의 매개’로
빈부·전쟁조차 ‘특별’하지 않아
반인반수 ‘긍정 아이콘’ 될 수도
조각 제작 한계 느껴 회화 집중
20240130_172201
기조 작가가 예술상회 토마 개인전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기조_살려주세요_캔버스에아크릴
기조 작 ‘살려주세요’

얼굴은 귀가 쫑긋한 토끼처럼 보이는데, 몸통은 영락없는 사람이다. 반인반수 같지만 기조 작가가 ‘자화상’으로 표현한 캐릭터다. 토끼를 닮은 얼굴은 그가 토끼띠여서 차용한 형상이다. 붉은 색으로 치장한 거대한 인간 앞에서 푸른색의 작은 인간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에서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화면을 엄습하는 분위기에서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 전해진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자화상’은 예술상회 토마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대체로 자신이다. 사안에 따라 공동체를 더 중심에 놓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순간순간 자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 되기 위해선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선결과제가 아닐까? 이는 기조 작가가 정체성을 찾고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다.

그가 평가하는 스스로의 성격은 민감함이다. “항상 내가 못나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누군가는 무심하게 넘어갈 일도 꼬투리를 잡고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자”지만, 완벽함에 대한 추구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예민하다 보니 매사에 내적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은 곧 스트레스로 연결 됐어요.”

민감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에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인구의 15-20% 정도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라는 통계에 비춰보면 지극한 정상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예민함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감각의 촉에 날이 서 있어 긴장감이 떠나질 않는 당사자로서는 마냥 긍정적일 순 없다. 늘 긴장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편한 상황일 순 없으니까.

기조 작가는 자신의 민감한 성격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의 대상으로 삼으며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민감함을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삼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의 민감함은 사유의 대상으로 신분을 갈아 치웠다. 이때 그가 창작의 매개로 삼은 민감함의 요체는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이다.

기억은 대개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사건이나 경험들의 저장소다. 그러나 예민한 그는 주로 부정적인 기억들을 곱씹는다.

그 부정적인 기억들을 자신을 설명하는 단초로 삼는 것이다. “과거에 제가 사로잡혔던 힘들었던 기억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헤치면 저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예민한 성격에서 오는 어두운 기억들은 회화에서 어두운 원색, 침울한 구성력으로 표현된다. 몸이 붉은 거대한 인간 앞에 웅크리거나 달리고 있는 푸른색의 작은 인간을 표현한 화면이 대표적이다. 붉고 푸른색은 어둡고, 두 마리의 토끼는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관계로 엮여있다.

어떤 화면에선 사람 대신 집이나 손가락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한 은유적인 기제들이다. “민감한 감정 상태가 자연스럽게 어둡고 자학적인 표현으로 드러납니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시트콤”이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그의 화면에선 연극적인 요소들이 짙게 배어난다. 토끼 두 마리가 갈등관계의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어서다. 이때 붉은 색과 푸른 색 토끼를 동시에 병치되는데, 이는 작가에게 중의적 개념을 펼치는 방법론으로 활용된다. 붉은색은 활동적이거나 위험한 이미지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고, 푸른색은 평화로운 분위기와 내성적인 이미지가 겹치는데, 작가는 이처럼 색이 가진 중의성을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내면 상태”에 대한 은유의 대상으로 활용한다.

빨강이든, 파랑이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으로, 또는 부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정적으로 구분 짓는 것에 회의적이다. 무엇이든 녹여버리는 용광로처럼 특정 감정을 내면 프리즘으로 통과시켜 평범한 일상으로 치환하는 것이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그의 최종 목표다. 작품 제목 ‘어느 특별하지 않는 날’ 역시 평범함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태도는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자화상’을 확대하면 ‘시대상’이 되는 이치다. “빈부 격차나 전쟁 같은 동시대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현상들을 자연의 섭리 속에서 바라보게 되면 두려움이나 슬픔의 강도가 낮아질 것입니다. 그것마저 특별하지 않는 일상으로 보는 것이죠.”

중의적인 개념으로 구축한 그의 화면에선 해석의 여지 또한 넓다. 만화 속 캐릭터 같은 모습에서 누군가는 낭만을 떠올리기도 하고, 반인반수 형상에서 혹자는 미래 인류를 떠올리기도 한다. 작가의 부정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긍정의 아이콘으로 작동할 여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떠나면 관람객의 몫이죠.”

감정 상태를 작품의 근간으로 하는 작업의 특성상, 그의 작업은 일종의 일기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을 소환하지만 현재의 감정상태가 부가되어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했다. “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됐고, 나 대신 대역이 등장한다는 배경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명명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부정적인 기억을 소환해서 곱씹는 행위를 통해 그가 얻는 것은 감정적인 해소다. “제가 구축한 화면은 머릿속에 있는 무중력 상태의 기억 덩어리들인데, 이것들을 새롭게 꺼내놓고 작업하다 보면 해소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곱씹는 과정에서 기억에 저장된 스트레스들이 조금씩 해소되죠.”

그의 전공은 조각이다. 작업 초기에는 도자 기법으로 조각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런 그가 회화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물성의 무게, 제한적인 표현 등 조각이 가지는 한계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도자 기법에선 작가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는 불의 영역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회화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게 다가왔다. 그렇더라도 조각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밀도감은 회화 작업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전시는 1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