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또다시 설을 맞으며
[대구논단] 또다시 설을 맞으며
  • 승인 2024.02.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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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또다시 설을 맞는다. 올해 설에도 노인들의 화두는 늙음과 병과 요양원 이야기이다. 그중에서 제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제사 이야기는 항상 자조적이고 체념적이다.

L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L의 할아버지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다른 도시에 사는 작은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아, 할아버지 제사를 인제 그만 지내자. 다른 집도 지내지 않은 집이 많다.” “예 알겠어요. 작은아버지는 오지 마세요. 저는 지낼 테니까요”

L은 30대 후반이고, 작은아버지는 60대 중반이다. 작은아버지가 6∼70대 노인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아버지의 이런 행태는 제사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는 노인 세대의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일부 노인들도 제사 무용론에 동의하고 있다, 사문난적의 굴레가 두려워 속내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제사에 피로감을 가진 노인들도 많다.’ 이런 의심에 대해 강력히 부인할 수 있는 노인들은 몇이나 될까?

‘할아버지가 누구인가, 작은아버지의 아버지인데 제사를 지내지 말자니?’ L은 작은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L은 평소에 작은아버지가 못마땅했다. 작은아버지는 제사가 있는 날, 늘 손님처럼 왔다가 손님처럼 가셨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몇 번 제사에 빠지셨다. 제사에 성의가 없었다. 그래도 L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조상 제사에 대해서는 L의 부인도 대단하다. 그녀는 제사를 항상 긍정적으로 모셨다. L의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가 안쓰러워 음식을 간단하게 차리라고 타이르지만, 며느리는 불평 한마디 없이 휴대전화기를 뒤져서 제사음식 레시피를 알아낸다. 아들과 며느리는 천생연분인 것 같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과 며느리가 늘 자랑스럽고 대견하였다.

L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제사를 모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넉넉한 경제 사정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모셨다. 기제사가 있는 날 자정이 넘어서 세수하고, 한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유건을 쓰셨다. 제물을 정성껏 다듬으시며 제사상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다. 제사에 임하시는 모습은 조상에 대한 공경 그 자체였다. 그 후 L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모실 때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늘 오버 랩 되었다.

L은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에게 제사에 대해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제사를 꼭 지내야 한다. 제사는 효의 근본이다.’ 등등 어떤 말씀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정성껏 당신이 하실 일만 하셨다. L은 그것을 보며 자랐다.

요즈음 노인들은 제사에 관한 토론을 많이 한다. 이들 중 제사 문화가 쇠퇴하는 것에 대해 격정적으로 성토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런 노인들이 제사를 과감히 개혁(?)하기도 한다. 조부모 제사를 생략하고, 부모 제사도 두 분을 한날한시에 지낸다. 차례는 성묘로 대신하고, 제사 자체를 생략하기도 한다. 그런 때는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거기다 언론도 이를 부추긴다. ‘만 20세 이상 성인 절반이 제사 지낼 계획이 없다.’ 신문 헤드라인이다. 무척 자극적이다.

사람이란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주관을 아무 생각 없이 팽개쳐 버린다. 그들은 그것을 변화와 쇄신으로 여긴다. ‘제사 지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 잘못된 생각들이고 즉흥적인 행동이다. 제사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주관이 있다면 시대의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흐름을 강화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정의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특히 자녀들에게 제사를 강조하거나, 비관하거나, 도덕적으로 훈계할 필요도 없다. 부모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식은 변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L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천재지변이나 사나운 맹수들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늘, 땅, 자연, 조상에게 빌었다. 그중 가장 친근한 보호막인 조상신에게 재사를 통해 구원을 빌었다. 제사는 고려시대만 해도 일정한 양식이 없었다. 그러다 조선 초에 송나라의 ‘주자가례’가 도입되면서 제사에 효가 강조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제사는 ‘주자’의 고향 남송 지방의 풍습들이 많이 반영되었다. 따라서 제사의 절차와 방식, 음식들을 지금 우리 집 형편에 맞게 바꾸어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성균관 의례 정립 위원장). 다만 제사의 근본이 조상에 대한 ‘사랑, 공경, 정성’임을 간과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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