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잔인한 처방전
[좋은 시를 찾아서] 잔인한 처방전
  • 승인 2024.02.1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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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자

쌓인 함박눈 무게를 견디는 소나무는/ 소금에 듬뿍 절여져 고개 들지 못하는/ 눈빛 흐린 고등어의 침묵이던가요

갓 뽑아낸 팽팽한 거미줄에 투명한 죄를 걸어두죠

칡넝쿨이 한때 친절했다, 하여도 벼랑 끝의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아니었다고/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죠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는 새벽기도는/ 짓눌리는 통증에게 내미는 친절한 처방전이라/ 나, 믿기로 했으니까요

살며 살갑게 마주친 눈빛들은 모두/ 알고 보면 내 편은 아니었던 거죠

◇심수자=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4년 <엔솔러지> 젊은 시 20인에 선정.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수성문인협회,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현 <소리문학회> 회장. 대구경북예술가곡회 회원. 2023년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술뿔』 2014년 『구름의 서체』 2017년 『가시나무 뗏목』 2019년 『종이학 날다』 2021년 『 각궁』 2023년이 있음.

<해설> 함박눈이 쌓인 소나무는 아름다운 경치여서 왠지 멋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눈의 무게를 견디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가지가 찢기는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네 어머니가 묵묵히 삶을 견뎌 오던 그런 모습의 다름 아니다. 더해서 시인은 그런 소나무에서 소금에 절여져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고등어의 흐릿한 눈알을 떠올리고 있으니, 낯선 비유가 공감각적 이미지로 그려지면서 침묵의 실체인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환치하는 놀라운 경지를 이미 1연에서 다 보여주고 있다. 나머지 후반부로 가면서 투명한 죄, 칡넝쿨의 친절 등은 시인의 새벽 기도에서 십자가의 무게로 옮겨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통제와 억압에서 오는 그런 통증을, 눈을 눌러쓴 소나무를 통해 신에게 올리는 호소문 형식을, 이 시는 빌려 표현하고 있다.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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