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페널티 킥이 분명합니다
[문화칼럼] 페널티 킥이 분명합니다
  • 승인 2024.02.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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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한국축구가 아시안컵 4강에서 멈췄지만 우리 젊은 ‘국대’들은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축구 A매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통하여 일종의 ‘국격’이 발현되는 장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침대축구(이번에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와 비교되는 깨끗한 매너, 상대를 존중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경기에 임하는 우리대표들의 자세나 경기 전후의 인터뷰를 보면 정신과 육체가 단단하고 참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적과 같았던 8강전 경기결과와 더불어 호주 중계진의 한마디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손흥민이 만들어낸(?) 페널티킥 상황에서 심판 판정 전에 이미 호주 중계팀은 단호하게 저건 페널티 킥이 맞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 내내 아주 객관적 기조로 중계를 했다(고 한다.)

옛날 TV도 없던 시절 해외에서 벌어지는 권투시합을 라디오 중계로 듣노라면 우리 선수가 계속 때리고 있다는데 훗날 사진을 보면 상대선수 얼굴은 멀쩡한데 우리선수 얼굴은 엉망인 경우가 있었다. 편파판정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국뽕’의 결과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요즘도 이런 경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 8강전의 호주 중계방송은 참 신선하게 비쳐지고 그들 세계를 다시 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라고 하면, 인종차별과 범죄자를 조상으로 둔 나라! 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단어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으며 호주라는 사회가 오히려 모든 면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지인 중 해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성공한 삶을 꾸려가는 분들이지만,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그런데 유달리 호주에 계시는 분들만 이곳이 살기 좋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자연 환경이 좋아서 그런가? 뭐지? 그렇게 물가도 비싸고 특히 시드니의 경우 집값이 강남이상이라는데 왜 살기 좋다고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이번에 조금이나마 풀렸다.

이곳에 거주할 소정의 자격을 갖추면 호주 사회의 일원이 된다. 자격 기준은 이들이 자국 사정에 따라 좁혔다 넓혔다하지만 그 기준선이 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노후까지 거의 완벽히 보장되는 것 같다. 여기에 인종이나 빈부의 차별은 없다.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야 모든 나라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그 촘촘함과 퀄리티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 성격의 분야만이 아니라 더 수준 높은 삶을 위한 인프라 역시 매우 풍부하다.

세계3대 미항 이라는 시드니 항구에 나가보면 그 아름다움이야 두말 할 나위가 없지만 그보다는 짧은 시간에 서구 문명의 꽃을 활짝 피운 인간의 놀라운 집념과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 것인가? 라는 관점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시드니 도심에도 잘 다듬어진 공원이 곳곳에 조성되어있지만 약간 외곽지로 나가면 도시가 공원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속에 사람을 위한 시설물들이 듬성듬성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미술관·도서관·공연장뿐만 아니라 체육시설 등 인간답게 살기위한 조건을 정말 잘 갖추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의 문화예술 수준이 세계최고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특히 이러한 소프트웨어를 담고 있는 공간 즉 건축물은 하나같이 대단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 또한 이러한 문화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참여도 역시 대단히 높은 것 같다. 그리고 시드니에 가볼만한 곳이 너무 많아 아직 극히 일부밖에 보지 못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하는 직원들의 친절이다. 특히 국공립 시설 관리자들의 관객에 대한 배려가 인상적이다.

이들은 통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안내를 한다. 이곳이 낯설어 어리버리 해 하는 나에게 이들은 무시나 짜증이 아니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와(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가온다) 안내를 해준다.

관광객이 많은 도심도 마찬가지지만 딸이 사는 조용한 주택가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여기서는 느낄 수 없다. 동네 바닷가를 거닐거나 이웃한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트램을 타고 오가는 길 어디서든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없다.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들(?) 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은 것 같다. 물론 다름에 대한 거부반응은 인간으로서는 완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곳역시 온갖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페어플레이에 관한 한 분명한 인식과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 같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가 쉽게 말할 내용은 아니지만 그 잠시에도 여기서 살고 싶은 매력을 강하게 받았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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