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술잔 속의 장미
[좋은 시를 찾아서] 술잔 속의 장미
  • 승인 2024.02.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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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시인

물고기 한 마리

살점이 움푹 파인 초승달

휘어진 바다를 어루만진다

가시 하나

내 비늘을 흔든다

나는 또 기필코

너를 안고

내가 너를 찌르고도

고통인 줄 모른다

머리칼에 수북이 젖어든 달빛

골목 깊숙한 곳까지 헤엄치다

헝클어진 술잔 속에 빠져든다

가시 하나 빼려고

퍼득퍼득 술잔을 들이마신다

밀어내고 싶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장미 한 잎 살아났다

◇김영숙 = 울산문인협회원. 등대문학상 입상. 울산산업축제 시부문 우수상.

<해설> 물고기와 초승달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경지가 술잔 속에 있는 것인가? 사물의 본질을 허물고 있으면서 너를 안고 내가 너를 찌르고도 고통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자신이 가시를 품은 장미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술에 취한 장미였기에 그런 것인가?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자신에 몸에서 가시를 빼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음이 이 시에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결국 가시 하나 빼려고 퍼뜩 술잔을 들이마시는 행위를 통해서 내면의 고통 때문에 온몸을 이리저리 퍼덕이는 물고기의 모습을, 마치 자신으로 그려놓은 건 아닐까. 상대의 사랑을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했을 때의 심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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