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입장차이
[목요칼럼] 입장차이
  • 승인 2024.03.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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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흔히 가정사에 있어 똑 같은 사실을 두고도 아들일 때 입장하고 사위일 때 입장하고 다르다고 한다. 이는 딸일 때 입장하고 며느리일 때 입장하고 다른 것과 똑 같다. 즉 자신이 어떤 입장에서 사실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부부사이에 갈등을 불러오고 심한 경우 갈라서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이 현재 의대증원을 두고 대학 본부 측과 의대 교수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의대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로 전국 수련병원에서 수련중인 전공의들이 현장을 이탈하여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전국 의과대학이 있는 대학으로 부터 내년도 신입생 증원규모에 대한 수요를 집계한 결과는 40개 대학에서 현재보다 3,401명의 증원신청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월 실시한 사전 조사시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보다 훨씬 상회하는 수치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 대학이 제출한 수요와 교육역량 등을 감안하여 증원 배정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늘어난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에 반영하려면 개별 대학들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심의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4월말까지는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학장들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등이 의대생 수업거부, 교수진 반발 등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며 대학 본부에 증원 신청 연기를 요청했으나 교육부가 ‘신청하지 않으면 증원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으로, 대학본부 측에서는 ‘1998년 이후 27년 만인 증원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며 신청을 강행하였고, 그 결과는 정부 목표 2,000명을 훨씬 상회하는 3,401명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전국 모든 대학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에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은 아무리 교육을 위해 투입되는 재정이 많다고 해도 인기가 많아 학생 충원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또한 설령 정부 입장에 공감하지 않는 대학들도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제출을 거부하는 식으로 반기를 들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즉 대학운영에 있어 국고 재정지원사업 의존도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이런 사정을 고려한 듯 대학들의 증원 신청 규모가 무난히 2000명을 넘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의대 입학증원을 신청한 대학들은 의대를 키워 지역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역사회 요구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비록 의대 교수진과 학생들의 반대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지역의료 사정과 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의 경영난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번 의대입학정원의 증원은 의료계에서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직업과 전공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소명을 무시하고 특정 진료 분야에만 집중되어 소위 필수의료분야의 공백을 초래함으로써 이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의사 수를 늘려 의료공백을 막아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계에서는 오늘날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이유를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인 응급·외상·감염·분만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는 진료과정에서 위험부담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낮은 의료수가와 만일의 사태에 따른 형사 처분 및 고액 배상 부담을 해소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의대증원과 함께 정부가 제시하는 의료수가 인상 및 범위 확대와 소송 부담 완화, 전문의 고용 확대 등의 당근책이 의료계의 주장대로 구체적이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해도, 9000명에 육박하는 전공의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1만 1481명의 집단 휴직으로 이어질 문제인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조그마한 불편이 초래하면 그 탓을 남에게 돌린다. 이번 입학정원 증원에 대해서도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각자 이유를 제시하면서 극렬하게 반대하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는 많은 수험생들과 대학에서는 크게 환영하고 있고, 의료계의 파업으로 진료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의료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의대증원에 대한 입장차이로 인해 의과대학이 있는 대학 내의 갈등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벌써 일부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을 하고, 의대생들이 휴학을 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비록 자신들의 입장에서 억울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으로 사회적으로 돈과 명예가 함께 부여되는 소명을 생각하고 대승적인 입장에서 행동해주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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