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농사밖에 모르시던 어머니
세상 기억 다 지워버리고도
볕 좋은 날
씨 뿌리는 건 잊지 않으셨나 보다
<감상> 벽돌 구멍으로 돋아난 잡초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만납니다. 볕 좋은 날이어서, 볕 좋은 날을 잡아 씨 뿌리는 생전의 어머니가 잘 보입니다. ‘세상 기억 다 지워버리고도 씨 뿌리는 것만은 잊지않으시는’ 까닭은 농사밖에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어머니의 한평생, 그 자체이었기 때문입니다. 흙처럼 욕심없이 살았겠지만 힘겹고 곤궁한 일상이었을 터입니다. 굽이 굽이 험난한 삶이었을 터입니다. 채마밭이 아닌 벽돌더미가, 가꾸는 채소가 아닌 버려진 잡초가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지는 이유입니다. 대상을 보는 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구체적 이해이고 후자의 경우는 개념적 접근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따르면 앞의 태도는 무위(無爲)이고, 뒤의 태도는 유위(有爲)입니다. 어느 쪽이 문학적 글쓰기의 관점이어야 하는 지는 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그러면 왜 시인은 잡초에서 보이는 잡초를 보지 않고 어머니를 보았을까요? <기억의 저편>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관련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