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무늬가 된 상처
[달구벌아침] 무늬가 된 상처
  • 승인 2024.03.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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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복잡한 문제가 생겨 방법을 찾아야 할 때, 시선을 높이고 넓히면 생각도 따라서 커지는 듯 나도 모르게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고개를 든다는 건 당장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이기도 하거니와 혹, 높은 곳에 있는 큰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마당 가, 잎 떨어낸 감나무 가지위에 까치가 집을 짓고 있다. 물어다 놓은 가지들이 모여 집이 되어간다. 가지가 집이 된 둥지를 감싸안는다. 까치집의 완성을 응원하듯 봄의 새들이 날아와 갓 태어난 어린 새싹의 등을 다독이듯 두드린다.

집안과 바깥을 오가며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 또한 까치집이 되어가는 과정을 응원하듯 지켜본다. 가끔은 고개가 저리고 아프도록 올려다보며 서 있을 때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요목조목 주의할 점을 당부하는 엄마처럼. 지극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처럼. 실수하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실수하게 되는 처음처럼. 두 손과 마음을 모은 채 나무 아래 서서.

까치집 한 채에 들어가는 나뭇가지 수는 보통 팔백 개에서 천개쯤이라고 한다.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횟수는 그 두 배쯤 된다. 저리도 힘든 수고를 하필 겨울에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찾아보았더니 나뭇가지가 텅 비어있는 이월과 삼월, 요즘이야말로 까치가 새집을 짓는 때라고 일러준다.

까치가 둥지를 짓는 실력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건축가와 과학자들이 탄성을 지를 만큼 기술력까지 갖추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둥지를 틀 터는 어떻게 고르는 것인지 문득 의문이 든다. 천적으로부터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선 반드시 잎이 넓은 활엽수를 고른다는 것이다.

그것까지 대체 그들은 어떻게 알아차리는 걸까. 신기하기에 그지없다. 잎도 꽃도 없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둥지를 틀 터인 활엽수를 찾아내는 까치의 혜안, 조물주가 까치에게 준 그 혜안이 나에게 나, 너에게 너, 우리 모두에게도 있지 않을까.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바닥에 생긴 균열이 언뜻언뜻 눈에 비친다. 웬일인지 오늘은 금이 간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 나비를 그려놓았다. 나비의 날개 무늬 속에 갈라지고 부르튼 상처가 다소곳이 들앉아 있다. 상처였던 것이 무늬로 새겨진 것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마음 안의 상처가 무늬가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마음 밖의 상처는 이처럼 보듬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바닥에 난 균열뿐이랴. 살며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상처들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길 위에 그려진 나비 그림으로부터 한 수 인생을 배운 어스름 깔린 저녁이다.

머지않아 나비가 날아오는 풍경을 보게 되리라.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펼치니 한 생의 피로가 확 풀리는 듯 개운하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나비처럼 가볍고 홀가분하게 이 봄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꿈 꿰어 보는. 창을 흔드는 바람이 분주하다. 봄바람에 꽃향기가 새어든다.

머물던 자리에 흔적하나 남김없이 떠나기는 쉽지 않다. 아쉬움과 후회, 그리움 한 점 남지 않는 이별이 드물 듯.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 속 계절이 바뀔 때나 어떤 인연이 새로 들어오고 끝났을 때나 혹, 마음을 다한 이와 헤어져야 할 때도 어딘가에 가방 하나 둔 채 떠나온 것 같은 미련과 상처가 남아있기 마련 아닐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생각하듯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바람의 무게를 잴 수 없듯 상처의 무게 또한 그 누구도 정확하게 잴 수 없다. 잴 수는 없어도 덜어줄 수는 있으리라.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듯 말이다. 사람은 빛을 향해 자란다는 의미에서 식물과 같다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성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리라.

어둠은 고개가 자꾸 바닥으로 쳐지고 가라앉는 내리막길 같다. 당장 계산해야 할 것이나 풀어야 할 문제가 없더라도 고개를 한 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온종일 수고한 나를 위해, 상처를 어루만지며 밤새 그 곁을 지키고 앉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자세로 고개 들어 크게 숨 한 번 쉬어보는 삼월, 모두의 출발을 응원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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