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롱꽃을 혀꽃이 감싸주는 해바라기처럼 새 학기를 살자
대롱꽃을 혀꽃이 감싸주는 해바라기처럼 새 학기를 살자
  • 여인호
  • 승인 2024.03.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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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여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간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이태리 영화 해바라기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해바라기가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키이우 주변에는 해바라기가 보이지 않았다. 키이우는 도심 가운데 드네프르강이 흐르고 강 배후에는 오랜 도시답게 성당과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건물의 첨탑 부분은 양파 모양의 황금색 지붕으로 빛나고 있었다.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은 하늘색 외벽에 여러 종류의 페튜니아 꽃을 걸어 장식해뒀고 성 소피아 대성당은 지금도 사람이 발로 밟아 삼종기도 종을 울리고 있었다. 워낙 넓어 대지를 위, 아래 구역으로 나누는 페체르스크 수도원은 땅 위에는 사람들이 살고 지하에는 무덤이 있어 지상, 지하로 구분이 되기도 한다. 이곳은 삶과 죽음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원 내 수도사들이 동굴 같은 지하에서 수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해나 전쟁 때문이었다. 실제 페체르스크수도원은 몽골침입 때도 파괴되었고 이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피해갈 수 없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거듭된 침공으로 곳곳이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 사진을 보게 된다.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중에 하나라고 불리는 황금역(Zoloti Vorota)이 폭격을 피하는 대피소로 사용 중이고 일부 도시의 지하철역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있어 안타깝다. 러시아의 맹공은 수도 키이우 뿐만 아니라 돈바스 지역에도 있었다. 돈바스 지역은 도네츠강 주변의 탄광 지대이고 인근 항구 마리우폴은 크림반도와 이어져 지리적 요충지이다. 영화 해바라기의 배경인 헤르손이 이 근처이다. 이 지역은 마리우폴 왼쪽으로 흑해와 접해 있어 러시아가 집중 포화한 곳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 들판은 밀이 자라고 해바라기가 춤추는 곳이다.

영화 해바라기의 주인공(소피아 로렌)은 히틀러의 파병 제안을 수락한 무솔리니 때문에 원정군으로 참전한 남편을 찾아 나선 이태리 여인이다. 실종된 남편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주인공은 “당신 남편도 저 해바라기 밭에 묻혔을 거다.”라는 말을 듣지만 남편을 향한 사랑은 그녀의 행동을 막지는 못했다. 목숨을 걸고 남편을 찾아 나섰던 여인은 마침내 남편을 만나지만 남편은 기억상실증으로 아내를 몰라본다. 해바라기 전설과 같이 슬프다.

해바라기 전설은 물의 요정 클리티에가 언니까지 죽여가며 태양의 신 아폴론을 향해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아폴론은 클리티에의 구애를 거부한 이야기이다. 아홉 날 동안 머리를 풀어헤치고 차가운 땅에 앉아 태양만 바라보던 클리티에는 흙에 묻혀 뿌리가 되고,얼굴은 꽃으로 변한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해바라기의 꽃말은 죽어서라도 당신만을 바라보겠다는 클리티에의 사랑에서 유래되었다.

해바라기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에 한 명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고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해바라기 전설과 닮아서인지 아니면 고흐가 해바라기를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고흐는 해바라기 꽃병만 7종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중에는 꽃병 배경이 푸른 색인 것도 있지만 그 그림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022년 남아있는 해바라기 중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된 고흐의 해바라기가 토마토수프 세례를 당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색이 퇴색되고 있다고우려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토마토수프 투척까지 당하니 안타깝다. 해바라기 그림에 토마토수프를 던진 그들은 “예술이 환경보다 중요한가?”라고 환경의 중요성을 말했지만 이윤만 추구하여 자연을 훼손하는 한 기업가처럼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해 그림을 훼손한 것이어서 파괴 행위면에서 다를 바가 없다.

고흐만의 독특한 색으로 그린 자연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안정과 위안을 준다. 고흐의 살다간 흔적을 보기 위해 프랑스의 아를지방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고흐가 그린 하늘과 들판, 론강, 별빛, 해바라기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는 자에게 맞서야 하는 것이다. 말 못하는 그림을 더럽혀서는 안 될 일이다.

아를을 가로지르는 론강처럼 대구를 가로지르는 금호강이 있다. 여름날 대부잠수교 주변 강변 해바라기밭은 노랗다. 하늘은 쨍하니 푸르다. 이곳에 서면 왜 우크라이나 국기가 아래쪽은노란색 위쪽은 파란색인지 상상할 수 있다. 올여름 영화 해바라기 첫 장면처럼 해바라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우크라이나 해바라기밭을 사진으로나마 봤으면 한다. 해바라기가 한창인 9월 대부분의 국가들이 새학기를 시작한다. 해바라기 같은 아이들이 지하대피소나 까따콤(catacomb) 같은 지하동굴에서 벗어나 해를 바라보며 놀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빽빽한 대롱꽃을 혀꽃이 감싸주는 해바라기처럼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리는 평화로운 한 해였으면 하는 바람을 한국의 새학기에 가져본다.



손병철 <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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