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복효근 시인 '나비의 행로'
[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복효근 시인 '나비의 행로'
  • 승인 2024.03.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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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 이슬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막 만한 곳이 없다

나비는 마른 오소리똥 위에서 천국을 그린다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감로수로 마신 자도 있다

똥과 꽃을 오가는 그 힘으로 나비는 산다 비로소

난다

<감상> 검은 똥 위에 고운 나비가 앉아 있습니다. 똥은 죽음과 하강의 상징이고 나비는 생명과 상승의 상징입니다. 꽃의 향기가 똥의 악취 위에 나비가 앉아 있다니! 하늘을 지시하는 나비와 땅을 지시하는 똥, 삶과 죽음 만큼의 거리입니다. 날아오르려는 나비의 가벼움과 떨어져내리려는 똥의 무거움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와 같이 이질적 세계의 낯선 연결이 일으키는 힘을 신비평(new criticism)에서는 텐션(tension)이라 하지요. 이 시의 메시지는 <나비의 행로>에 대해서입니다. 어느 분석심리학자의 말을 빈다면 나비의 꿈, 나비의 개성화(個性化)에 대해서입니다. 요컨대 나비가 나비로서 나비답게 사는 것은 ‘날기’에 있는 바, 똥과 꽃 사이에서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입니다. ‘난다’를 연을 건너 띄어 독립된 행으로 강조한 까닭입니다. 행간걸침의 ‘비로소’가 그 증거입니다. 날기 위해서는 “똥과 꽃을 오가는” 부대낌을, 안고 뛰어넘는 포월(抱越)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 지혜의 출처가 “한 방울 이슬을 위해서는 사막 만한 곳이 없다”는 깨달음, 이를테면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행로를 찾았다는 원효대사의 일화입니다. 나비를 ‘나’로 바꾸어 읽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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