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중용(中庸)의 지혜를 배우자
<대구논단>중용(中庸)의 지혜를 배우자
  • 승인 2011.02.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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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옥 전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중용은 중국 유교 경전인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중의 하나이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녀야할 자세와 태도를 깊이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는 가장 철학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행동을 할 때, “중용을 택하라”라는 말을 한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중용의 도, 중용사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론 등으로 익숙하게 많이 듣는 말이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중용은 인간행위의 이상적인 기준이다. 중(中)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극단에 흐르지 않는 꼭 알맞은 것을 말하며, 용(庸)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떳떳한 한결같은 올바른 것을 말한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고 중정(中正)이다. 중정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곧고 올바른 것이다.

북송의 정자(程子)는 중용을 “편협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고(不偏之謂中), 변하지 않은 것을 용이라고 한다(不易之謂庸). 中은 천하의 옳은 길이요(天下之正道), 庸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다(天下之定理).”라고 말했다. 중용 2장에 “군자는 시중한다(君子而時中)”라는 말은 군자는 그 때에 그 경우에 꼭 맞는 적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중용이란 인간 행위의 가장 참되고 불변하는 원리이다.

중용은 선과 악의 중간이 아니며, 양 극단 사이의 수량적인 중간치가 아니라 최선정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중(中)자는 가운데 중, 맞힐 중의 뜻이 있다. 적중(的中), 명중(命中), 백발백중(百發百中)은 활을 쏠 때 가장 정확하게 맞힌다는 뜻이다. 양궁시합에서 가장 가운데 10점짜리에 맞히는 것이 중용인 것이다. 논어 선진편에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 것과 같다(過猶不及).”라는 말은 지나친 것도 잘못이고, 부족한 것도 잘못으로 중용의 도(道)는 적정상태(propriety)가 으뜸가는 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이든지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다. 자동차가 과속하면 사고를 일으키고, 난로가 과열하면 화재가 발생한다. 지나친 열정은 이성에서 벗어나며, 지나친 정의는 부당함이 되고, 지나친 진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지나친 검약은 인색하고 비루해지며, 지나친 행동은 항상 과오를 범하고, 지나친 자유는 방종이 되고, 지나친 확신은 모두가 어리석은 것이고, 지나친 호기심은 화를 부르고, 지나친 청결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잉영양 섭취는 만병의 근원이지만 부족하면 생존이 어렵다. 비타민A가 부족하면 야맹증, 안구 건조증으로 실명하고 심지어는 사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비타민A 부족으로 연간 약 200만 명이 사망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섭취해도 기형아 출산, 골다공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운동이 부족하면 온갖 질병이 오고 너무 지나치면 몸에 해롭다.

친절은 좋은 덕목이지만 너무 지나치면 부담스럽고 너무 부족하면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관이 지나치면 망상의 종이 되고 주관이 모자라면 군중의 노예가 된다. 가야금 줄을 소리가 가장 잘 날 때 까지 적절하게 당기는 상태가 중용이며, 인간만사에 꼭 알맞은 행동이 중용이다. 진정한 중용의 도는 표현상의 중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하며, 균형 속에서 발전을 추구하는 일종의 문제해결 방법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감동과 흥분을 일으켰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 내용의 핵심은 결국 중용의 최적상태를 찾는데 있다. 센델 교수는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칸트,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정의와 우리 주변에서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혼인, 대리출산, 소수집단우대정책 등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과 가치관을 소개하고 진지하게 성찰함으로써 스스로 합의점을 찾아가도록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든다. 센델 교수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 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의란 인간이 잘 알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중용의 진리를 끝임 없이 찾아가는 개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큰 결정을 내릴 때에 최선정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여러 각도에서 전체적으로 고찰하고 대립을 이루는 양쪽의 관계를 깊이 분석하여 종합적으로 최적상태인 중용을 찾아야 한다. 중용의 도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정의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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